과학자들이 달에서 가져온 흙에서 처음으로 식물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향후 달 유인(有人) 기지에서 작물을 재배해 자급자족하는 일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플로리다대의 로버트 펄 석좌교수 연구진은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서 가져온 토양에 애기장대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자라게 했다”고 13일 네이처 자매지인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그동안 지구 궤도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이나 우주선에서 수경재배로 식물을 키운 적은 있지만 지구 아닌 다른 천체의 흙에서 식물을 키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1년 만에 달 토양 재배실험 성사돼
연구진은 1969년 최초로 인류를 달 표면에 내려 보낸 아폴로 11호와 그해 뒤를 이어 달로 간 아폴로 12호, 1972년 마지막으로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킨 아폴로 17호가 각각 달에서 가져온 토양에 애기장대 씨앗을 심었다. 애기장대는 배추, 무와 같은 십자화과(科) 식물로, 유전자가 완전히 해독돼 과학실험에 자주 쓰인다.
펄 교수와 같은 대학의 안나-리사 폴 교수는 지난 11년 동안 세 번에 걸쳐 달 토양으로 식물을 재배하는 실험을 신청했다가 이번에 처음 허가를 받았다. 연구진은 골무 크기 홈이 있는 세포 배양용기 12개에 달 토양을 0.9그램씩 5밀리미터 깊이로 넣고 씨앗을 심었다. 이후 물과 영양분을 줬다.
동시에 미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가 지구의 화산재로 달 토양과 비슷하게 만든 모사토(JSC1A)도 배양용기 16개에 넣고 역시 애기장대 씨를 심었다. 애기장대는 달 토양과 지구 화산재 토양에서 모두 싹을 틔웠다. 물과 영양분만 주면 달에서도 농작물을 키울 수 있음을 실제로 입증한 것이다.
◇우주입자 노출 많으면 성장 느려
애기장대는 달 토양에서도 싹을 틔웠지만 성장속도는 지구 화산재 토양보다 느렸다. 뿌리도 잘 자라지 않았다. 잎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도 했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연구진은 애기장대에서 어떤 유전자가 작동했는지 조사했다. 달 토양에서 자란 식물은 유전자가 1000개 이상 더 작동했는데 대부분 염분이나 중금속, 활성산소 등 유해요인에 대항하는 스트레스 반응 유전자들이었다.
스트레스 유전자 발현 형태는 달 토양 사이에도 차이가 났다. 연구진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에 더 오래 노출된 아폴로 11호 토양에서 스트레스 반응이 가장 강했다”고 밝혔다. 11호 토양에서는 애기장대의 스트레스 유전자가 465개 작동했지만, 12호와 17호 토양은 각각 265개와 113개였다.
연구진은 앞으로 달 토양에서 식물이 잘 자라도록 개선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50년 만에 다시 추진 중인 아르테미스 유인 달탐사 프로그램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펄 교수는 “장차 달을 우주탐사 허브나 발사장으로 쓰려면 그곳 토양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달탐사를 추진하고 있어 식물 재배실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휴성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장은 “이미 포천의 현무암으로 국산 달 모사토를 개발했지만 주로 우주장비 시험에 쓰고 식물 재배는 하지 못했다”며 “생명과학 분야 정부 연구기관과 함께 국내에서도 달 환경 재배 실험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