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죽은지 5시간이 지난 사람의 눈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연구가 발전하면 실명(失明)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유타대의 프란스 빈버그 교수와 스크립스 연구소의 안네 하네켄 박사 공동 연구진은 “사후 기증받은 눈의 망막을 되살려 신경세포들이 생전처럼 서로 정보를 주고받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최신호에 발표했다.
◇망막의 중심인 황반 처음으로 되살려
사람이 죽어도 눈은 최장 5시간까지 빛에 반응을 한다. 하지만 눈 안쪽 망막에서 빛에 반응하는 광수용체 세포들은 다른 세포와 정보를 주고받지 못한다. 빛을 봐도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니 살아도 산 게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망막세포들이 사후에 신호를 주고받지 못하는 것은 산소 부족 때문임을 알아냈다. 이번에는 사망한 사람에서 눈을 적출한 다음 산소와 영양분을 제공하는 특수 용기에 넣었다. 이후 망막에 전기자극을 주고 빛을 비추자 황반의 광수용체에서 생전과 같은 전기신호가 나타났다. 황반은 망막에서 시신경세포가 밀집된 곳으로 이곳에서 뇌로 시각정보가 전달된다.
유타대의 프란스 빈버그 교수는 “이전에도 사후 눈의 전기활동을 일부 회복시켰으나 황반까지 되살리지는 못했다”며 “이번에 망막세포들이 생전처럼 서로 대화하도록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시 살아난 황반은 빛의 강도에 상관없이, 색에도 반응했다.
◇퇴행성 안과 질환 치료에 새 전기 마련
사후 기증받은 눈에서 망막세포의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다면 실명 위기에 처한 사람에 이식해 시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현재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노인성 황반 변성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서 황반이 손상되는 노인성 황반 변성은 65세 이상 미국인의 실명과 시력손상의 제1 원인이다.
물론 당장 황반 이식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증받은 망막세포가 기존의 세포들과 빈틈없이 연결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연구가 발전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전에 실명의 원인을 찾는 연구와 치료제 개발에는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신약 실험에 주로 쓰는 쥐는 눈에 황반이 없어 황반 변성 치료제 연구에서 한계가 있다. 사후 기증받은 눈에서 황반을 되살려 실험을 할 수 있다면 질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다. 빈버그 교수는 “과학계는 그동안 실험동물로 할 수 없던 사람 시력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통해 사후 눈 기증이 촉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뇌사 상태 회복시킬 가능성도 제기
눈은 뇌, 척수와 함께 중추신경계를 이룬다. 이번 연구는 뇌사 상태에 빠진 중추신경계를 되살릴 길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2019년 미국 예일대 연구진도 죽은 지 4시간이 지난 돼지의 뇌를 되살려 뇌 손상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
이번 연구는 돼지 뇌 복원보다 더 발전했다. 당시 연구진은 인공혈액으로 돼지의 혈관과 세포 기능 일부를 회복시키는 데 그쳤지만 이번에는 실제 신경 기능을 회복시켰다. 빈버그 교수는 “예일대 연구진은 돼지 뇌에서 신경세포들의 활동을 되살리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살아있는 뇌가 감지하는 전기신호를 망막의 황반에서 되살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