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을 개발 중이던 HK이노엔은 지난 9일 국내 임상시험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작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1상을 허가받은 지 1년도 안 돼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HK이노엔은 “국민 다수가 코로나에 감염됐고 여러 차례 백신 접종으로 면역력이 확보됐다”며 “대규모 유행 발생 가능성이 줄어드는 등 상황이 급변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HK이노엔 사옥./뉴스1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이 잇따라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을 중단하고 있다. 지금껏 30곳 이상 회사가 임상 허가를 받고 개발에 나섰지만 2년 넘도록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치료제·백신 개발 착수 소식에 치솟았던 주가는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다시 떨어졌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치료제·백신 개발이 쉽지 않다는 것은 회사가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코로나를 이용해 주가 띄우기에만 몰두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백신·치료제 개발 포기 잇따라

국산 백신 개발은 해외와 비교해 속도가 늦다. 식약처에 따르면 코로나 백신 임상 승인을 받은 곳은 12곳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임상 3상을 마치고 품목 허가를 신청했고, 유바이오로직스가 3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제넥신은 지난 3월 백신 개발을 포기했고, 나머지 회사들도 초기 단계인 임상 1~2상에 머물러 있다. 임상 1상은 안전성, 2상에서는 효능을 확인한다. 대규모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3상을 마쳐야 정식 의약품으로 등록받을 수 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졌고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되면서 국산 백신 개발은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mRNA 백신 개발에 나선 국내 바이오 기업 큐라티스는 지난해 7월부터 임상에 나섰지만 시험 대상자를 모집 중이고, 아이진은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임상 1상 진행 중이다. 게다가 화이자와 모더나, 노바백스 등 해외 백신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백신 팔 곳이 마땅치 않아 매출도 장담 못 한다.

코로나 치료제 개발은 더 심각하다. 식약처에 따르면 임상 승인을 받은 곳은 19곳이다. 하지만 GC녹십자는 혈장 치료제 개발을 일찌감치 포기했고, 부광약품·일양약품 등도 먹는 치료제 개발에 손을 뗐다. 큐리언트도 임상 대상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진행하던 임상 2상을 지난 2월 중단했다. 식약처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은 셀트리온 항체 치료제는 변이에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내 공급이 중단됐다.

◇주가 띄우기에 신뢰도 바닥 떨어져

코로나 초기부터 국내 연구·개발(R&D) 규모나 기술력으로는 국산 치료제·백신 개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정부 예산 지원에 의존해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지난해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 예산은 1528억원 책정됐고, 올해는 3210억원으로 늘었다. 정부 예산 지원은 물론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에 나선다는 보도자료 한 줄에 주가까지 폭등하니 제약사 입장에선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일부 회사의 코로나를 이용한 주가 띄우기 경쟁이 결과적으로 제약·바이오 업계 전체 신뢰만 떨어뜨렸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코로나 치료제 개발에 나섰던 신풍제약은 한때 주가가 19만원을 넘었지만, 지금은 2만원대로 떨어졌다. 셀리드는 지난 12일 오미크론용 백신 임상 1·2상을 신청했다고 발표했지만, 주가가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7.3% 떨어졌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변이가 또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언제 임상 3상하고 제품을 출시하느냐”라는 반응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