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에 대해 코로나 백신이 유도하는 항체의 감염 예방 효과는 떨어지지만 T세포 면역반응은 여전한 것으로 국내 연구 결과 확인됐다. 백신 접종 후 돌파감염이 되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되지 않는 원리가 밝혀진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의 신의철 바이러스면역연구센터장 연구진은 “미국 화이자의 mRNA(전령RNA) 백신이 유도하는 T세포는 오미크론 변이에도 이전과 비슷한 면역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에 밝혔다.
◇적군 침투 못 막아도 소탕 능력은 여전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으면 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돌기(스파이크)에 달라붙는 항체가 나와 세포 감염을 막는다. 바로 중화 효과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스파이크에 돌연변이가 이전보다 2배나 생겨 항체 중화 능력이 30%대로 떨어졌다.
연구진은 이번에 항체 대신 백신이 유도하는 백혈구인 T세포를 조사했다. T세포는 항체 생산을 유도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죽인다. 화이자 백신을 2~3회 접종한 의료진 40명과 코로나 감염 후 백신을 2회 접종받은 20명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오미크론 변이에 대해서도 T세포의 면역반응이 이전의 80~90% 수준으로 나타났다.
즉 백신이 부른 항체 부대는 적군의 위장능력이 발전하자 침투를 막지 못했지만 T세포 부대는 이전처럼 곳곳에 암약한 적군을 소탕하고 있다는 말이다. 덕분에 백신을 맞은 사람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돌파 감염돼도 경증에 머물고 빨리 회복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바이러스 변이도 T세포에는 효과 떨어져
신의철 센터장은 “T세포가 오미크론 변이에도 여전히 면역효과를 유지하는 것은 작용 부위가 항체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항체는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서 한정된 위치에만 결합한다. 바이러스가 이곳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항체 결합력이 금방 떨어진다.
반면 T세포가 바이러스에 결합하는 부위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고 심지어 사람마다 결합 부위가 다르다고 신 센터장은 설명했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돌연변이를 일으켜도 T세포의 공격을 벗어나기가 원천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앞서 지난 1월 호주 멜버른대와 홍콩과기대 공동 연구진도 “T세포가 인지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단백질 1500여 가지를 분석한 결과, 오미크론 변이가 T세포를 피해갈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 학술지 ‘바이러스’에 밝혔다. 당시 호주 멜버른대의 매튜 맥케이 교수는 “오미크론이 항체를 피할 수 있어도 T세포 반응은 여전히 방어력을 제공해 중증을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IBS 연구진은 또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한 사람도 백신 주사를 맞을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제시했다. 코로나에서 회복한 후 백신을 접종받으면 T세포 면역반응 강도가 7배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높아진다.
코로나에 걸렸다 나으면 자연면역력이 생기면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이전과 다른 변이 바이러스를 만나면 소용이 없다. 신의철 센터장은 “자연면역이 생긴 사람도 추가로 백신 주사를 맞으면 T세포를 통해 어떤 변이에도 일정한 방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논문 제1저자인 IBS의 정민경 박사는”이번 연구는 오미크론에 대한 면역반응 분석을 중화 항체에서 T세포까지 확장한 데 의의가 있다”며 “특히 코로나 감염 후에도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