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두창 바이러스 전자현미경 사진. 1958년 실험실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사람 환자는 1970년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왔다. 설치류를 통해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영국 보건안전청

원숭이 두창(monkeypox)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과학계가 원인 규명에 나섰다. 왜 과거와 달리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환자가 나오는지, 바이러스가 이전과 다른 형태인지, 왜 남성 동성애자들에서 집중적으로 환자가 나오는지 집중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처럼 대유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이전과 다른 예외적인 감염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

23일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의 모리츠 크래머 교수와 미국 하버드 의대의 존 브라운스타인 교수가 만든 환자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원숭이 두창 확진 또는 의심 환자는 16국에서 193명 발생했다. 지난 6일 영국에서 첫 환자가 나온 이래 유럽과 북미, 중동, 호주로 퍼졌다.

여러 국가에서 동시 발생한 것은 예외적

원숭이 두창은 사람이 걸리는 천연두와 비슷하지만 증상이 약한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이다. 고열과 함께 두통, 근육통이 나타나고 온몸에 수포가 발생한다. 1958년 실험실의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돼 이 같은 이름이 붙었지만 숙주 동물은 주로 설치류 같은 작은 동물이다.

원숭이 두창은 이전에도 여러 나라에서 발생했다. 1970년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첫 환자가 발견된 이래 주로 아프리카에서 집단 발생했다. 2003년에는 미국에서 반려설치류인 프레리 도그와 접촉한 사람 47명이 원숭이 두창에 집단 감염된 적이 있다. 프레리 도그는 가나에서 온 동물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는 영국과 유럽, 북미에서 동시다발로 환자가 잇따라 나와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 UCLA의 앤 리모인 교수는 네이처에 “이런 형태의 전파는 정말 놀랍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생한 환자는 이미 지난주에 1970년 이래 아프리카 이외에서 발생한 환자수를 넘어섰다.

미국 대평원에 사는 설치류인 프레리 도그. 사람에게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를 옮긴다./미 CDC

복수 경로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파

지난 19일 포르투갈 국립보건연구소의 주앙 파울루 고메스 박사가 환자에서 채취한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의 유전자 해독 결과를 처음 공개했다. 바이러스는 2018~2019년 나이지리아를 다녀오고 원숭이 두창에 걸린 싱가포르, 이스라엘, 미국인 환자의 바이러스와 유사했다.

포르투갈 연구진은 지난 4일 환자에서 시료를 채취했다. 스페인 연구진은 시료 채취 당시 원숭이 두창 환자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영국에서 나온 첫 원숭이 두창 환자는 5일 증상이 나타나고 6일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번에 유전자가 해독된 바이러스는 영국 환자와는 무관한 것이다.

또 영국에서 이후 발생한 환자들도 처음 환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복수 경로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원숭이 두창이 전해진 것으로 추정한다.

바이러스 분석은 코로나보다 더 걸려

원숭이 두창은 코로나처럼 쉽게 검사를 하기 어렵다. 일단 증상이 의사들에게 생소하다. 비슷한 질병인 천연두가 이미 1970년대 종식됐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원숭이 두창 환자를 매독으로 오인하기 쉽다.

유전자 검사도 오래 걸린다.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는 에이즈 바이러스보다 유전자가 20배나 크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인 RNA를 이루는 염기가 약 3만개인데, 원숭이 두창의 DNA 염기는 20만개나 된다.

이번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가 갑자기 인간에게 잘 감염되는 형태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레이나 맥킨타이어 교수는 네이처에 “바이러스 유전자를 더 해독해봐야 이번에 발생한 환자들이 모두 하나의 바이러스에서 기원했는지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다행히 DNA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코로나 같은 RNA 바이러스보다 돌연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에게 잘 감염되는 형태로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가능성은 낮다는 말이다.

덴마크의 바바리안 노르딕이 개발한 천연두, 원숭이 두창 백신 임바넥스. 2019년 미국에서 지네오스(JYNNEOS)란 이름으로 천연두, 원숭이 두창 백신으로 허가받았다./Bavarian Nordic

치명률 낮고 백신, 치료제도 들어

과학자들은 원숭이 두창 환자가 20~50세 남성 동성애자들에 집중된 점도 주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로자문드 루이스 박사는 사이언스에 “결코 전형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는 밀접촉자에게 침방울이나 고름을 통해 옮겨가지 정액을 통해 퍼지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에이즈처럼 직접 성교로 감염되기보다 장시간 피부 접촉이 감염의 원인일 것으로 본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맥킨타이어 교수는 “우연히 바이러스가 남성 동성애 집단에 유입되고 계속 퍼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원숭이 두창에 걸리면 보통 수 주 내 회복하지만, 중증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다소 증세가 경미한 서아프리카형은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인 치명률이 약 1%, 중증 진행 확률이 높은 콩고분지형은 10%다. 최근 유럽에서 발견된 원숭이 두창은 서아프리카형으로 파악됐다.

원숭이 두창은 천연두 치료제인 항바이러스 약품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백신도 나와 있다. 덴마크 바바리안 노르딕은 천연두, 원숭이 두창 백신인 ‘임바넥스’를 개발했다. 유럽에서는 천연두 백신으로 허가받았지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원숭이 두창에도 쓸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원숭이 두창 백신 확보 나선 나라도

영국은 이달 초부터 원숭이 두창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다. 백신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지 4일 이내면 효과가 있다. 다른 나라는 의료진에게 백신을 투여하지는 않았다.

사이언스는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원숭이 백신 개발사인 바바리안 노르딕이 지난주 10국에서 온 감염병 전문가들과 국제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바바리안 노르딕은 최근 몇 년 사이 원숭이 두창 환자가 증가했다며 백신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회의는 6개월 전에 잡힌 것이었다. 이미 유럽의 한 국가는 바바리안 노르딕과 백신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전력비축물자의 하나로 천연두 백신을 비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