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하 중심부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의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앞서 2019년 처녀자리 M87 은하의 블랙홀 모습을 관측한 이후 3년 만이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국제 공동 연구진은 “전 세계 전파망원경 8대를 연결해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고 지난 12일 ‘천체물리학저널’에 밝혔다.
천문학계는 이번 관측으로 191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 이론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질량이 크면 클수록 시공간이 더 많이 휘어진다고 예측했다. EHT 연구진은 이 원리를 이용해 블랙홀의 모습을 알아냈다.
◇M87보다 가깝지만 관측은 더 어려워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력이 강해 직접 관측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대신 블랙홀의 윤곽인 ‘그림자’를 관측하는 방법을 택했다. 블랙홀은 중력이 워낙 강해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한다. 시공간이 휘면 블랙홀 뒤쪽을 도는 물질에서 나오는 빛도 앞으로 휘어져 나온다. 이렇게 블랙홀을 앞뒤로 둘러싼 물질을 다 확인하면 블랙홀 윤곽이 드러난다.
궁수자리A* 촬영 사진은 이전의 M87 블랙홀 사진처럼 가운데가 텅 빈 도넛 모양이다. 밝은 부분은 블랙홀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을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물질에서 나온 빛이다. 이 물질과 블랙홀 경계면이 바로 이번 프로젝트 이름이기도 한 사건 지평선이다. 가운데 검은 부분은 블랙홀의 윤곽인 그림자다.
EHT 연구에 참여한 한국천문연구원 손봉원 박사는 “궁수자리 A*블랙홀은 인류가 직접 관측한 블랙홀 중에 가장 가까운 블랙홀”이라고 말했다. 궁수자리A* 블랙홀은 3년 전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관측됐다. 우리은하 중심에 위치한 궁수자리 A* 블랙홀은 지구에서 약 2만7000 광년(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져 있고, 질량은 태양보다 약 400만배 크다. M87 블랙홀과 비교하면 태양계에서 거리가 2000분의 1 정도 가깝지만 질량은 1500분의 1 정도다.
궁수자리A*는 M87보다 거리는 가깝지만 관측은 더 어려웠다. 궁수자리A*나 M87이나 주변 물질의 회전 속도 자체는 비슷하다. 하지만 크기가 큰 M87은 한 바퀴를 도는 데 며칠에서 몇 주 정도 걸리는 반면 궁수자리A*는 단 몇 분이다. 주변 가스와 물질에서 나오는 빛의 패턴이 더 빠르게 변하는 것이다. EHT 연구진은 “같은 속도라도 큰 공원을 도는 강아지보다 꼬리를 쫓는 강아지의 사진을 찍기 더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블랙홀 제트 미스터리 규명에 도움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전혀 다른 환경에 있고 크기도 다른 블랙홀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EHT 과학이사회 공동 위원장인 세라 마르코프는 “두 블랙홀은 매우 유사한 모양을 보이는데, 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한 것”이라 말했다. 일반상대성 이론이 예측한 대로 우주에 존재하는 블랙홀의 모습은 비슷할 것이라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블랙홀 사진을 비교하면 은하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밝힐 수 있다고 기대한다. 김재영 경북대 교수는 “이전 M87 블랙홀과 비교해 궁수자리 A 블랙홀은 제트와 같은 강력한 물질 분출 현상이 없다”며 “두 블랙홀의 영상을 함께 연구함으로써 현대 천체물리학의 큰 난제 중 하나인 블랙홀 제트의 물리적 기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블랙홀 촬영에는 전 세계 80여 기관에서 3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참여했다. 연구진은 세계 각지의 전파망원경 8개를 하나로 연동해 지구 크기의 거대 망원경처럼 활용했다. 특히 대규모 블랙홀 관측 자료를 처리하기 위해 수퍼컴퓨터를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이 블랙홀을 더 자세하게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궁수자리A* 블랙홀 사진은 2017년 이뤄진 관측 정보를 기반으로 했다. 이후 EHT 관측망에 망원경이 추가되면서 2020년에는 총 11대까지 늘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국내에 설치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도 EHT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