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25일 유전자 교정 농작물을 유전자 변형 농작물(GMO)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집권당인 보수당이 의회 다수당인 점을 고려하면 법안은 거의 수정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유전자를 교정해 발암물질을 줄인 밀과 비타민 D가 크게 늘어난 토마토가 영국인의 식단에 오를 길이 열렸다.
◇영국 “유전자 교정은 GMO 아니다” 판단
유전자 교정(gene editing)은 효소 단백질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동식물의 유전정보가 담긴 DNA에서 특정 부위를 잘라내 원하는 특성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영국 정부가 상정한 ‘유전공학(정밀 교배) 법안’은 유전자 교정 작물을 개발하고 재배,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번 법안은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브렉시트(Brexit)의 결과물이다. EU는 유전자 교정 농작물도 GMO로 규정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반면 영국 정부는 유전자 교정과 GMO는 엄연히 다른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교정은 교배가 가능한 같은 종 안에서 유전자를 수선한다는 점에서 다른 종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GMO와 다르다고 본다. 결국 유전자 교정은 수년씩 걸리는 전통적인 육종을 수개월로 단축했을 뿐이란 것이다.
영국은 이를 근거로 지난해 유전자 교정 연구 관련 규제를 해제한 데 이어 이제 재배, 시판 규제도 없앤 것이다. 이제 유전자 교정 농작물로 만든 식품은 별도의 표시 없이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다.
◇과학계 “농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 기대
영국 정부는 유전자 교정을 통해 가뭄과 병충해에 강하고 건강에 좋은 농작물을 만들 수 있어 농업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환경식품농무부의 수석자문과학자인 기드온 헨더슨 박사는 과학매체 뉴사이언티스트에 “유전자 교정은 자연적인 교배를 모방한 것”이라며 “유전자 교정은 영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환경에 도움을 줄 잠재력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국은 유전자 교정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내고 있다. 로탐스테드 연구소는 최근 건강에 좋은 유전자 교정 밀을 처음 파종했다. 밀에 아스파라긴이라는 아미노산이 많으면 이 밀가루로 구운 빵에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가 많이 생긴다. 로탐스테드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밀에서 아스파라긴 합성 유전자를 차단했다. 유전자 교정으로 낟알 크기를 키운 밀도 개발했다.
존 인스 센터는 지난 24일 하루 두 알이면 비타민 D 결핍을 해결할 토마토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식물’에 발표했다. 역시 유전자 교정으로 비타민 D를 다른 물질로 바꾸는 유전자 기능을 차단했다. 연구진은 이번 토마토 1개에 들어있는 비타민D 양은 계란 두 개나 참치 28g에 맞먹는다고 밝혔다. 유전자 교정은 가뭄과 병충해에 강한 농작물을 구현해 기후변화에 더 잘 대응할 수도 있다.
농민들도 찬성 입장을 보였다. 전국농민연합의 데이비드 엑스우스 부회장은 BBC방송에 “과학기반의 수정 법안은 영국의 식품 생산과 환경에 많은 이익을 제공하고 농민들에게 인구증가와 기후변화 문제를 극복할 또 다른 도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반겼다.
◇소비자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
반면 GMO에 반대해온 단체들은 이번 법안에 반발했다. 영국 유기농산물 단체인 토양 협회의 조 루이스 정책소장은 BBC방송에 “정부가 건강에 나쁜 식단과 농작물의 다양성 부족, 가축 과밀화, 이로운 곤충의 감소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인기가 없는 기술을 우선시 한 데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도 유전자 교정 농작물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농무부 자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유전자 교정 농작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지만 32%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뉴사이언티스트지는 영국의 주요 수퍼마켓들에 문의했더니 유전자 교정 식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판매 준비를 하고 있는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유전자 교정 농작물이 건강과 환경에 이롭다는 점을 알려 소비자 호응을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영국 농무부 설문 조사에서 유전자 교정 농작물이 제초제나 살충제를 덜 쓰게 하는 등 환경에 도움이 되는 특성을 가진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이 70%까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