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재에 덮인 채 2000년 동안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순간 모습 그대로 남은 사람의 유전자가 처음으로 해독됐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가브리엘레 스코르라노 교수와 이탈리아 살렌토대의 세레나 비바 박사 연구진은 2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화산재에 덮인 상태로 발굴된 폼페이인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해독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933년 폼페이에서 발굴된 남녀 두 명의 귀 안쪽에서 유전물질을 추출해 해독했다. 이들은 기원후 79년 8월 24일 오늘날 ‘장인의 집’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점심을 먹다가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에 덮여 사망했다.
특이한 점은 다른 폼페이인들은 대부분 화산재를 피해 도망치다가 집밖에서 죽었지만 이번에 DNA를 분석한 남녀는 탈출하려는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파를 바라보고 누운 채로 죽었다. 남성은 사망 당시 나이가 35~40세이고 여성은 50세로 추정됐다. 신체 나이로는 충분히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바 박사는 “남녀의 자세가 왜 도망하려던 모습이 아니었는지는 건강 상태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DNA는 해독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남성의 유전자만 해독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남성의 허리뼈에서 결핵균의 유전자를 찾았다. 남성은 화산폭발 이전에 이미 결핵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던 것이다.
남성의 혈통도 예상과 달랐다. 연구진은 남성의 DNA 해독 결과를 고대 유라시아인 1030명과 현대인 471명의 유전정보와 비교했다. 그 결과 모계혈통인 미토콘트리아 DNA와 남성 Y염색체 유전자에서 이탈리아 중부인과 함께 서쪽 사르디니아 섬 계통 유전자가 확인됐다. 고대 로마시대 이탈리아인들이 태어난 곳에 대부분 머물지 않고 다른 지역 사람과 피를 섞어 유전적으로 매우 다양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3월 다른 이탈리아 연구진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당시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분출된 엄청난 양의 화산재는 20분도 안 돼 폼페이인들을 몰살시켰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폼페이인의 온몸을 덮은 화산재가 순식간에 죽음을 불렀지만 유전자는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했다고 추정했다.
스코르라노 교수는 “앞으로 폼페인인에 대해 생물학 연구를 하면 사람뿐 아니라 다른 생물에서 나온 환경 DNA 등 새로운 사실을 더 많이 알려줄 수 있다”며 “서기 79년 어느 하루를 찍은 사진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