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영국에서 첫 원숭이두창(monkeypox) 환자가 확진된 이래 30일 오후 1시 현재까지 확진 또는 의심 환자가 전 세계 33국에서 584명으로 늘었다. 1970년 첫 환자가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서 이처럼 많은 원숭이두창 환자가 발생한 적은 없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원숭이두창이 코로나처럼 대유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하고 특정 집단에서 환자가 집중되는 등 이전과 다른 감염 형태를 보여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프리카 여행객 한 명에서 시작 추정
영국의 국제 학술지 네이처와 미국 과학매체 사이언스뉴스는 과학자들이 이번 원숭이두창 발병 사태와 관련해 네 가지 핵심 질문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먼저 이번 원숭이두창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추적하고 있다.
원숭이두창은 사람이 걸리는 천연두와 비슷하지만 증상이 약한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이다. 고열과 함께 두통, 근육통이 나타나고 온몸에 수포가 발생한다. 1958년 실험실의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첫 환자는 1970년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왔다.
원숭이두창 환자가 유럽 각지에서 나오자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벨기에와 프랑스, 독일, 미국 과학자들이 잇따라 환자 몸에 있는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해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다소 증세가 경미한 서아프리카형은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인 치명률이 약 1%, 중증 진행 확률이 높은 콩고분지형은 10%다.
유전자 분석 결과 최근 유럽에서 발견된 원숭이 두창은 서아프리카형으로 파악됐다. 지난 19일 포르투갈 국립보건연구소는 포르투갈 환자에서 채취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2018~2019년 나이지리아 여행객들에서 나온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와 유사했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의 분석 결과도 비슷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이번 원숭이두창 집단발병은 한 환자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의 버니 모스 박사는 지난 27일 네이처에 “처음 발병한 비아프리카인이 올해 아프리카 서부 지역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이나 사람과 접촉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간단한 설명”이라고 밝혔다.
벨기에 열대의학연구소는 지난 20일 “유전자 해독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환자의 바이러스는 포르투갈에서 온 것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바이러스를 해독한 벨기에 환자는 포르투칼 리스본을 다녀온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 포르투갈 환자는 어디서 감염됐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이전 원숭이두창 환자 발생시 이미 바이러스가 유입돼 지역사회로 퍼져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하지만 원숭이두창 감염 증상이 워낙 쉽게 눈으로 확인된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된다.
◇돌연변이로 감염력 강해졌을 가능성 낮아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통해 감염력이 강해지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코로나는 중국 우한에서 나온 것보다 현재 오미크론 변이가 훨씬 감염이 잘된다. 다행히 원숭이두창은 유전물질이 변이가 덜한 DNA이다. 코로나는 RNA를 갖고 있어 변이가 심했다.
하지만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연구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쉽게 변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유전자가 크기가 코로나의 6배나 되기 때문에 분석도 그만큼 어렵다.
이전까지 환자가 주로 발생한 아프리카에서 바이러스 자료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번에 전 세계로 퍼진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와 이전 아프리카 바이러스를 비교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아프리카 과학자들은 10년 넘게 원숭이두창의 세계적 발병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나이지리아 질병통제센터의 이페다요 아데티파 박사는 네이처에 “수년간 원숭이두창 연구비를 구하고 논문을 발표하려 힘들게 노력했다”며 “이제 아프리카 밖에 병이 퍼지자 각국의 보건당국이 갑자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동물 연구도 부족하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숙주동물은 다람쥐나 쥐 같은 작은 설치동물로 추정된다. 2003년 미국에서 환자 43명이 집단 발병한 것도 서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설치류와 접촉한 반려동물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숙주 동물에서 바이러스를 찾아내지 못했다.
◇원숭이두창은 백신, 치료제로 대응 가능
치료제나 백신으로 대응이 가능한지도 관심사이다. 과학자들은 가능하다고 본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사람이 걸리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유사하다. 이 때문에 원숭이두창은 천연두 치료제인 항바이러스 약품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과학자들은 본다.
백신도 있다. 원숭이두창과 비슷한 천연두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쳔연두는 1980년대 박멸돼 백신 접종이 중단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가 유사시를 대비해 천연두 백신을 비축하고 있다.
덴마크 바바리안 노르딕은 천연두, 원숭이두창 겸용 백신인 ‘임바넥스’를 개발했다. 유럽에서는 천연두 백신으로 허가받았지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원숭이두창에도 쓸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일부 유럽 국가는 새로 나온 원숭이두창 백신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백신과 달리 이 백신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지 4일까지도 예방효과를 보인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길기 때문이다. 영국은 원숭이두창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에게 백신을 접종했다. 미국도 최근 의료진에게 접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코로나처럼 전체 인구에 접종하기보다 소수 대상의 포위접종(ring vaccination)이 적합하다고 본다. 밀접촉자나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선 예방접종을 맞게 해 질병 확산을 막는 전략이다.
동물 감염에도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숭이두창의 숙주가 늘면 인간사회로 더 빨리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동물은 인간과 달리 증상이 눈에 보이지 않아 이미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동성애자들에게 낙인찍지 말아야
이번 원숭이두창 감염에서 특이한 점은 스페인과 벨기에의 동성애자 행사, 파티에서 감염자가 집중 발생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원숭이두창은 피부 상처나 체액, 비말을 통해 밀접촉자에게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UCLA의 원숭이두창 전문가인 앤 리모인 교수는 네이처에 “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우연히 동성애 집단에 들어와 퍼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성애자들이 신체 밀접촉 과정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지 에이즈 바이러스처럼 정액이나 성교시 분비물로 감염된 것은 아니란 말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안전센터의 아메시 아달자 박사는 지난 26일 사이언스뉴스에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거나 키스를 하면 독감에 걸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독감이 성교를 통해 감염되는 전염병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아데솔라 잉카-오군레예 박사도 같은 매체에 “원숭이두창에 겁먹거나 공포감을 느낄 필요도, 감염자에게 낙인을 찍을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