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그린란드 남동쪽 피오르 해안에서 포착된 북극곰. 대륙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 위에 서 있다. 일반 북극곰은 바닷물이 언 해빙 위에서 사냥하지만 그린란드 남동쪽은 해빙이 없어 육지 얼음 조각을 이용한 것이다./NASA

그린란드에서 육지에서 바다로 떨어져 나온 얼음을 이용해 사냥을 하는 북극곰 집단이 발견됐다. 일반적인 북극곰은 평생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빙(海氷) 위에서 사냥한다. 온난화로 인한 해빙 감소로 북극곰이 멸종할 것이라고 예측됐지만 일부는 이미 환경 변화에 적응했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의 크리스틴 라이드레 교수 연구진은 1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해빙이 없는 그린란드 남동쪽 해안에서 북극곰 수백 마리가 다른 집단과 떨어져 생존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바다 얼음 대신 육지 얼음 활용

북극곰은 생애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는 해양 포유류다. 바닷물이 언 얼음 덩어리인 해빙 위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숨 쉬러 올라온 물개를 사냥한다. 최근 온난화로 해빙이 급격히 줄면서 북극곰도 멸종위기에 놓였다. 북극곰 3세대에 해당하는 35년 이내에 개체수가 30%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린란드 남동쪽의 북극곰(붉은색 점)은 육지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을 이용해 사냥하다 보니 행동반경이 바다 위 해빙에서 주로 사는 북동쪽 북극곰(파란색 점)보다 훨씬 좁았다./미 워싱턴대

그린란드 남동쪽 해안은 다른 곳보다 북극곰이 더 빨리 사라질 곳으로 추정됐다. 서쪽 대륙빙하와 물살이 빠른 동쪽 바다 사이에 갇힌 데다 사냥과 번식의 터전인 해빙이 1년에 100일 정도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싱턴대 연구진은 2015~2019년 탐사를 통해 그린란드 남동쪽에서 북극곰 수백 마리가 독자적으로 생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들은 그린란드 북동쪽에 사는 북극곰과 유전적으로 상이한 집단으로 밝혀졌다.

그린란드 남동쪽은 빙하가 만든 U자 모양의 협만인 피오르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이곳 북극곰들이 연중 250일은 협만을 떠다니는 민물 얼음과 눈의 혼합체 위에서 사냥을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셈이다.

행동반경 좁고 새끼도 덜 낳아

이번 연구 결과는 북극곰이 급격한 기후변화에 적응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라이드레 교수는 “남동쪽 피오르 지형이 모든 북극곰에게 구명정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린란드 남동쪽에서 육지 얼음 위를 이동하는 암컷 북극곰과 한살박이 새끼들./미 워싱턴대

그린란드 남동쪽에서 북극곰이 이용하는 얼음 조각은 여차하면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기 쉽다. 북극곰은 물살이 거세지면 바로 헤엄을 쳐 육지로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행동반경도 좁았다. 연구진은 북극곰 27마리에게 위성신호 발생기를 부착해 7년 간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그린란드 북동쪽에 사는 북극곰 암컷이 4일에 40㎞를 이동하지만 남동쪽 암컷은 10㎞에 그쳤다.

라이드레 교수는 “이곳은 세계의 아주 작은 구석”이라며 “오히려 남동쪽 끝으로 내몰린 수백 마리 북극곰은 기후변화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동쪽의 북극곰 암컷은 다른 곳보다 체구가 작고 새끼도 덜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