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바다로 떨어져 나온 얼음을 이용해 사냥하는 북극곰 집단이 발견됐다. 일반적 북극곰은 평생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빙(海氷) 위에서 사냥한다. 북극곰이 바다표범 대신 육지에서 순록을 잡고, 남쪽으로 내려와 회색곰과 이종교배(異種交配)하는 일도 늘었다. 북극곰이 온난화에 맞서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바다 얼음 대신 육지 얼음에서 사냥
미국 워싱턴대의 크리스틴 라이드레 교수 연구진은 지난 17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해빙이 없는 그린란드 남동쪽 해안에서 북극곰 수백 마리가 다른 집단과 떨어져 생존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북극곰은 생애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낸다. 바닷물이 언 얼음 덩어리인 해빙 위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숨 쉬러 올라온 바다표범을 사냥한다. 최근 온난화로 해빙이 급격히 줄면서 북극곰도 멸종 위기에 놓였다. 북극곰 3세대에 해당하는 35년 이내에 개체 수가 30%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린란드 남동쪽은 빙하가 만든 U 자 모양 협만인 피오르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해빙은 1년에 100일 정도만 유지된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2015~2019년 탐사에서 이곳 북극곰들이 나머지 250일은 협만을 떠다니는 민물 얼음과 눈의 혼합체 위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셈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 그린란드 남동쪽 북극곰은 북동쪽에 사는 동족과 200년 전 갈라져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극곰이 아예 육지에서 사냥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폴란드 그단스크대 연구진은 지난해 10월 국제 학술지 ‘극지 생물학’에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에 있는 북극 연구 기지 근처에서 북극곰이 순록을 사냥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관찰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북극곰이 순록을 쫓거나 먹은 사례를 12건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북극곰이 육지에서 바닷새 알이나 땅에 묻은 쓰레기를 먹는 장면도 목격됐다.
◇인간 조상들처럼 다른 곰과 유전자 나눠
북극곰이 먹이를 찾아 남하하면서 잡종도 늘고 있다. 미국 밴더빌트대 연구진은 지난해 4월 ‘지구 변화 생물학’에 “북극 해빙이 줄어들며 굶주린 북극곰(polar bear)이 남쪽으로 내려와 회색곰(grizzly bear)과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교배종인 피즐리(pizzly)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피즐리는 전체적 외형은 북극곰처럼 보이지만, 발과 다리에는 회색곰처럼 갈색 얼룩이 있다. 피즐리 증가는 북극곰이 그만큼 살기 어려운 증거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북극곰의 감소 추이가 피즐리의 증가와 맞아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부에서는 잡종이 북극곰의 유전적 다양성을 높여 오히려 기후변화 적응력을 높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한 예로 미국 휴스턴 해협에 사는 어류인 걸프 길리피시는 대서양 길리피시와 교배하면서 항만의 독성 화학물질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진화했다.
북극곰이 회색곰과 피를 나눈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버펄로대의 샬럿 린드크비스트 교수는 지난 6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북극곰과 회색곰은 13만년 전에도 유전자를 나눴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1만5000년~13만년 전 스발바르제도에 살았던 북극곰의 화석에서 DNA를 추출해 해독했다. 이를 오늘날 북극곰, 회색곰과 비교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회색곰에서 북극곰으로 유전자 유입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곰들의 이종교배는 네안데르탈인과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피를 나눈 것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현생인류는 유전자 2%를 네안데르탈인에게 물려받았다. 그런데 최근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도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가 발견됐다. 북극곰과 회색곰도 이처럼 환경 변화에 따라 쌍방향으로 유전자를 나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