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두 번의 도전 끝에 21일 발사에 성공했다. 누리호는 설계부터 제작, 시험, 인증과 발사까지 전 과정을 국내 독자 기술로 만든 우주 발사체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위성을 자력으로 수송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 한국도 민간 주도의 새로운 우주 경쟁인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에 뛰어들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누리호 발사 성공을 확인한 직후 연구진과 가진 화상 대화에서 “이제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 우주로 가는 길이 열렸다”며 “우리 청년들의 꿈과 희망이 우주로 뻗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정부는 항공우주청을 설치해 항공우주 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화면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양손으로 ‘엄지 척’ 포즈도 취했다.

누리호는 전날인 20일 발사대에 세워져 마지막 점검을 받은 뒤 21일 오후 4시 우주로 발사됐다. 발사 4분 30초 후까지 1단과 페어링(위성 보호 덮개), 2단이 차례로 분리됐다. 오후 4시 14분 36초 성능 검증 위성이 성공적으로 분리됐다. 지난 1차 발사 때는 실패한 구간이다. 이후 함께 실렸던 위성 모사체(가짜 위성)도 궤도에 진입했다. 위성은 남극 세종기지와 대전 지상국과의 초기 교신에도 성공했다.

◇세계 우주 시장에 진출할 계기

이번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확보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위성을 다른 나라 발사체를 빌려 쏘아 올렸다. 국산 달궤도선 ‘다누리’도 오는 8월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으로 발사될 예정이다. 해외 발사체 업체가 부르는 대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 정세에 따라 외국 발사체를 이용하지 못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올 하반기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6호와 차세대 중형위성 2호를 러시아 로켓으로 발사할 계획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체 로켓을 찾고 있다. 영국도 지난 3월 우주인터넷 위성 36기를 러시아 로켓으로 발사하려다 무산됐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국의 발사체를 보유해야 할 필요성을 새삼 일깨웠다”며 “누리호 발사 성공은 우주 독립국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국제 우주 외교에서도 한국의 입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우주 개발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 중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가 누리호를 발전시켜 지구 저궤도를 넘어 달이나 화성으로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능력까지 확보하면 국제 우주 협력을 주도할 수 있다. 정부는 누리호의 성능을 개량해 2030년 달 착륙선을 발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이번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기술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우주 외교 능력을 확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누리호는 급성장 중인 우주 발사체 시장을 공략할 수출 상품이 될 수도 있다. 시장조사기관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우주발사 서비스 시장은 2022년 142억1000만달러(약 18조3100억원)에서 2029년 319억달러(약 41조10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국방력 강화 획기적 전환점

누리호의 성공은 우리 국방력 강화에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른 나라에 공개하기 힘든 군사위성을 언제든 우리 힘으로 발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현재 위성 발사 대행을 하는 나라는 미국·러시아·유럽·일본·중국·인도 등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에는 우리 위성 발사를 맡길 수 없다. 우리 위성에는 미국 기술들이 들어가 있어 미국이 우주 기술 수출을 금지한 중국과 인도에서는 발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 발사체 기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도 주목된다. 누리호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추진 방식, 구조, 단 분리, 유도항법제어 등 대부분 기술이 일치한다. 발사 후 지상으로부터 200㎞의 대기권을 넘어간 후 목표 궤도에 진입해 인공위성을 분리시키느냐, 아니면 1000㎞의 고도까지 계속 상승했다가 지구 중력에 의해 낙하해 지상을 공격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발사체 끝에 위성을 실으면 우주 발사체, 탄두를 탑재하면 미사일이라고 불린다. 러시아의 우주 발사체인 드네프르, 로콧도 핵무기를 싣던 ICBM에 위성을 탑재한 것이다. 북한도 사실상 ICBM을 개발했지만 발사 시험에서 단순하나마 위성을 탑재했다고 해서 우리보다 먼저 우주 발사체를 개발한 나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