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누리호 발사는 한국의 우주 도전사 30년의 결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우주 발사체의 시초는 1993년 발사한 KSR 1호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유장수 박사 주도로 개발한 1단 고체연료 추진 과학로켓이다. 이후 1997년 2단형 KSR 2호도 탄생했다. 유장수 박사는 후일 항우연을 나와 AP위성을 창업해 현재 회장으로 있다. AP위성은 이번에 누리호에 들어간 성능 검증 위성을 만들었다.
한미 미사일 지침 때문에 고체 로켓의 추력을 더 키울 수 없게 되자 우리 정부는 액체연료 로켓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결과 2002년 추력 13t의 첫 액체 우주로켓 KSR 3호가 탄생했다. 최연석 전 항우연 원장을 이어 조광래 전 원장이 개발을 이끌었다. 조 전 원장은 나로호 개발도 지휘했다.
항우연은 당초 KSR 3호를 여러 개 묶어 1단으로 하고, 2단은 고체 KSR 2호로 하는 우주로켓을 독자 개발해 2005년 시험 발사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북한발 ‘대포동 쇼크’가 이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북한이 1998년 액체연료를 쓰는 3단 미사일 ‘대포동 1호’를 발사하면서 다단 로켓의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정부는 우주로켓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2002년 러시아 기술을 도입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2006년 러시아는 기술 이전 대신 1단 로켓을 만들어 넘기겠다고 입장을 바꿨고, 2013년 발사된 나로호가 그 결과물이다.
일부에서는 2006년 러시아와의 협력을 포기하고 독자 개발로 돌아섰더라면 누리호 발사가 더 빨랐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항우연 연구원들은 “나로호 개발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배운 노하우가 누리호 개발에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항우연은 나로호 발사에 최종 성공하기 전인 2010년부터 누리호 독자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하면서 우주로켓 개발을 위한 30년의 여정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