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개발의 총책임자인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지난 12년 3개월 동안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다고 한다. 2조원 가까이 되는 국민 세금으로 우리 발사체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늘 “뒤돌아서면 머릿속에서 ‘무엇이 빠졌지’라는 생각만 맴돌았다”고 했다. 누리호 발사 이틀 전날인 19일 밤에도 1시간마다 깨며 밤새 잠을 설쳤다고 한다. 누리호 발사가 성공으로 결정 난 21일 밤 10시쯤 온몸에 긴장이 풀린 그는 나로우주센터에 있는 기숙사에서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새벽 5시쯤 깬 고 본부장은 깜짝 놀라 창밖을 바라봤다고 한다. 그는 “(누리호를) 진짜 발사를 한 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며 “발사대에 누리호가 없는 것을 보고 그제야 어제 발사를 성공한 게 진짜였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공 뒤에도 꿈인지 생신지…우리가 못 할게 뭐 있나 ‘또 다른 시작’ 할 자신감 생겨”
누리호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0년 3월부터 개발에 참여한 그는 2015년부터는 본부장을 맡아 누리호 개발을 진두지휘해왔다. 항우연 내부에선 그를 조용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평가한다. 평소 말수도 적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다. 하지만 고 본부장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는 여러 차례 웃으며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속이 너무 후련하다”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누리호는 두 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지만,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고 본부장은 “2015~2016년 기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앞이 깜깜하고 언제 발사될지 막연한 때가 가장 힘들었고 기억에 남는다”며 “37만 개 부품 중에서 조그만 부품 하나라도 삐끗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1차 발사에서는 3단 산화제 탱크에 문제가 생기면서 목표한 궤도에 위성을 올려놓지 못했고, 2차 발사도 1단 산화제 탱크 센서 문제로 일정이 연기됐다.
주변 우려 속에서도 그는 뚝심 있게 연구진을 이끌었다. 고 본부장은 “1차 발사 때 문제가 됐던 3단 엔진 부분을 계속 확인했고 다 잘될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2차 발사일인 21일 비 예보가 있었지만, 고 본부장은 “더 늦추면 발사를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21일로 결정했다”며 “주말 내내 날씨를 보면서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다행히 발사 당일 하늘은 맑았고, 북상 중인 장마도 속도가 늦어지면서 누리호가 우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줬다.
◇ “2027년까지 누리호 4번 더 발사 외국에서도 협업 제안 많이 올 것”
고 본부장은 “누리호 성공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우주 선진국처럼 아직 달이나 화성에 갈 정도 기술력은 아니지만, 우리도 발사체 하나 정도는 가지게 된 것”이라며 “우리라고 못 할 게 뭐 있느냐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번 추가 발사를 통해 누리호 성능을 확실히 증명하면 외국에서도 많은 협업 제안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항우연은 2027년까지 누리호를 4번 더 발사해 성능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고, 2030년에는 누리호에 달 착륙선을 실어 보낼 계획이다.
고 본부장은 앞으로 누리호 후속 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에게 “그동안 제대로 쉰 적도 없었겠다”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10년 넘는 시간 쉬지 않고 달려온 만큼 이번 주는 쉬려고 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할 일을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