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가 아프리카들개의 번식기도 바꿔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식물이나 곤충, 새처럼 생태계 하단을 차지하는 생물들이 온난화에 따라 생활 주기를 바꾼 사례는 확인됐지만 대형 육식동물에서는 처음 확인됐다.
미국 워싱턴대의 브리아나 아브람스 교수 연구진은 28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지난 30년 간 아프리카들개가 새끼를 낳은 시기가 22일이나 늦춰졌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들개는 개과(科) 동물로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무리 전체가 같이 돌본다. 암컷은 90일 동안 굴에서 새끼들과 머물고 다른 동료가 사냥을 해 먹잇감을 제공한다. 아프리카들개는 현재 성체가 14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종으로 꼽힌다.
◇30년 동안 연중 최고기온 3.8도 상승
연구진은 보츠와나 육식동물 보존협회와 함께 1989~2020년 보츠와나 북부 259㎢ 면적에 사는 아프리카들개 60 무리를 관찰했다. 아프리카들개는 가장 시원한 겨울날에 새끼를 낳는다. 1990년 아프리카들개는 평균 5월 20일 새끼를 낳았지만 2020년에는 22일 뒤인 6월 12일로 늦춰졌다.
이 기간 일일 최고 기온은 1.6도 상승했다. 연중 최고 기온은 섭씨 3.8도나 올라가 온난화가 들개의 번식주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온난화로 생물의 주기가 바뀐 사례는 자주 관찰됐다. 꽃이 빨리 피고 이에 따라 곤충도 예전보다 일찍 나타났다.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도 봄에 일찍 나왔다. 하지만 들개처럼 주기를 늦춘 예는 드문 일이다.
미국 예일대의 제레미 코헨 박사는 “대부분 동물이 기후변화에 따라 생활사를 일찍 시작하지만 이번 결과는 생활사를 늦춘 드문 사례”라며 “변화 속도도 다른 동물 종에서 관측된 것보다 두 배나 빨랐다”고 밝혔다.
◇“프라이팬 탈출했는데 불구덩이”
새끼가 되도록 시원할 때 태어나길 바란 아프리카들개의 모성애는 빛을 보지 못했다. 아브람스 교수는 “생후 처음 굴에서 나온 새끼들의 숫자가 갈수록 줄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새끼들이 굴에서 자랄 때 예전보다 기온이 오른 탓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일종의 ‘생물계절학의 덫’에 빠졌다는 것이다. 생물 종이 환경에 따라 주요 생명활동의 시기를 변화시켰다가 기후변화 같은 예상치 못한 환경 조건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브람스 교수는 “불행히도 프라이팬을 뛰쳐나왔는데 불구덩이로 떨어진 상황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