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가장 병이 많은 곳에 가야 한다.” 1990년 이화여대 의대 예과 2학년에 다니던 한 학생이 청량리 시장에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갔다가 길가에 앉아 빗물 섞인 밥을 먹는 노숙인을 목격했다. 그는 자신이 의사가 되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은 “평생 노숙인 치료에 헌신해 ‘노숙인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최영아(52) 서울시립서북병원 내과전문의(진료협력센터장)를 제10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성천상은 JW중외제약을 창업한 고(故)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 존중 정신을 기리고 사회에 귀감이 되는 참의료인을 발굴하기 위해 2012년 제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억원이 수여된다.
최영아 의사는 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2001년 이후 20년 넘게 가난한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병원에서만 근무했다. 노숙인을 위한 그의 여정은 2002년 청량리 뒷골목에서 최일도 목사와 함께 다일천사병원을 세우고 의무원장을 맡은 것이 출발점이었다. 최 목사는 무료급식운동을 펼쳐 ‘밥퍼 목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다일천사병원의 유일한 의사로, 병원 인근 사택에서 생활하며 밤낮없이 노숙인을 돌봤다. 하루 100명이 넘는 환자를 보면서 월급은 고작 100만원이었다. 2004년부터는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있는 요셉의원에서 전일제 자원봉사 의사로 근무했다. 최영아 의사는 자선병원인 도티기념병원의 내과 과장으로 있다가 병원이 문을 닫자 2017년부터 공공의료기관인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노숙인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최영아 의사는 노숙인을 진료하면서 그들이 치료하기 어려운 난치병이나 희소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한두 가지 약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질환인데도 기본적인 위생과 영양 상태를 유지하지 못해 각종 합병증에 시달린다”며 “노숙인의 건강을 지키려면 치료보다 먼저 자립을 도와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했다.
최영아 의사는 2009년 서울역 앞에 여성 노숙인을 위한 쉼터인 마더하우스를 만들었다. 2016년 이를 확장한 회복나눔네트워크를 만들어 대표를 맡았다. 그 사이 노숙인의 마음까지 치료하기 위해 연세대 대학원에서 인문사회의학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 2015년에는 그때까지 치료한 노숙인들의 주요 질병을 분석한 사회의학 전문서 ‘질병과 가난한 삶’을 출간했다. 지난해에는 제33회 아산상 의료봉사상을 수상했다.
이성낙 성천상위원회 위원장(가천의대 명예총장)은 “최영아 전문의가 안정된 생활을 선택하는 대신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노숙인들을 위해 평생 인술을 펼쳐왔다는 점이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 존중 정신과 부합된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시상식은 오는 9월 21일 서울 서초동 JW중외제약 본사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