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국의 첫 달 궤도선 다누리 발사에서 단연 주목받은 것은 거대한 리본 모양의 다누리 궤적이다. BLT(탄도형 달 전이 방식)로 불리는 이 궤적은 달로 직진하는 대신 먼 우주로 나갔다가 지구 쪽으로 되돌아오는 방식이다. 직진 방식보다 연료를 20% 넘게 아끼는 마법 같은 루트로, 미국과 일본만 성공한 고난도 기술이다. 연료를 쓰지 않고도 발사체가 밀어준 힘으로 우주를 항행하는 것이다.
한국 우주개발 역사에서 BLT 설계는 전례 없는 도전이었다. 이 궤적을 설계한 것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달탐사사업단 ‘비탁(秘卓)’팀이다. 6명으로 구성된 비탁팀은 2020년 1월부터 7개월을 매달린 끝에 궤적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검증을 맡은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부터 “우리는 (당신들의) 설계도에 찬성한다. 항우연은 달까지 가는 저(低)에너지 궤적 설계에서 위대한 진전을 이뤘다. 축하한다”라는 회신을 받았다. 비탁팀을 이끈 박재익 박사는 5일 “BLT 궤적 진입에 실패했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대장정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말했다. 그는 “비탁팀 임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앞으로 24시간 다누리에서 오는 정보를 분석하며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했다.
달 궤도선 다누리 개발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사 일정이 오락가락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도 25명 안팎의 항우연 달탐사사업단 연구진은 심우주 탐사 시대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아직 4개월 반의 비행과 달 궤도 진입이라는 고비가 남았지만 비탁팀을 비롯한 연구진 덕분에 한국 우주과학이 한 걸음 진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 궤적 설계 위한 비밀병기들
우리 달 탐사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16년이다. 처음엔 3년간 개발해 2018년 달에 궤도선을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당초 궤적도 지구를 세 바퀴 반 돌다 달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연구진 내부 이견과 기술적인 한계 등으로 4차례나 사업이 변경됐다. 그 과정에서 달 궤도선의 무게도 550㎏에서 678㎏으로 불어났다. 무게가 늘면서 연료 부족이 난제로 떠올랐다. 연료 소비가 큰 기존 궤적으로는 정상적인 달 탐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달탐사사업단장이었던 이상률 현 항우연 원장은 2020년 1월 이 문제를 풀 BLT 궤적설계전담팀을 만들었다. 박재익, 이동헌(현재는 방준 박사로 교체), 홍승범, 송영주, 김영록, 배종희 박사로 구성된 팀 이름은 ‘탁월한 비밀병기’라는 뜻의 비탁이었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막막한 처지였다. 팀장인 박재익 박사는 “당시 BLT 궤적에 대한 개념도 없어 공개된 논문과 사례 분석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이상률 원장도 BLT 궤적의 창시자인 미국의 에드워드 벨브루노 박사와 나사를 찾아가 얻은 정보를 비탁팀에 제공했다.
궤적 계산은 소수점 아래 13자리까지 맞혀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었다. 13자리 중 하나만 틀려도 다누리는 우주 미아가 될 수 있다. 박 팀장은 “우주 선진국들은 논문에 중요한 정보들을 다 담지 않는다”면서 “궤적 설계에만 꼬박 7개월이 걸렸지만 그게 정답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20년 7월 나사가 “설계한 궤적을 써도 좋다”는 답장을 보내왔을 때 비탁팀은 환호성을 질렀다.
◇산·학·연 59곳도 숨은 주역
다누리 본체 개발과 제작은 김대관 달탐사 단장이 진두지휘했다. 김 단장은 항우연 위성연구소 약 50명과 함께 달 탐사 사업을 둘러싼 많은 논란 속에서도 묵묵히 달 궤도선 개발을 완수했다. 다누리 개발에는 한화와 AP위성, KAI 같은 민간 기업 40곳과 13개 대학교, 정부 출연연구소 6곳도 참여했다.
기업들은 궤도선 본체와 시스템 설계 지원, 조립, 시험을 수행했다. 특히 SK브로드밴드는 경기도 여주에 반사판 직경 35m의 국내 최대 크기 안테나를 구축했다. 이는 나사와 유럽의 안테나와 비교해도 기술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항우연은 설명했다. 달 궤도선 운영 종료 후에도 앞으로 국내외 심우주 탐사 프로그램에서 국제협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누리에 실린 탑재체 5기도 국내 연구진이 우리 독자 기술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