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심의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바이오 분야에서도 미국 내 생산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각) 바이오 분야의 미국 내 생산을 뼈대로 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미국에서 개발된 기술은 미국에서 생산까지 한다는 것으로 생명공학과 바이오 제조 관련 연구개발(R&D) 투자와 생산, 보안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이 중단되는 후폭풍에 휩싸인 가운데, 한국 바이오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 시각)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헨리 마이어 페스티벌 파크를 방문해 노동절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제조업 부활 의지를 피력하며 "한국, 일본, 전 세계의 제조업이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견제하고 ‘바이오 경제’ 선점

이번 행정명령은 의약품에서 바이오 연료·재료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 ‘바이오 경제’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해외 생산 기지 중심의 공급망을 미국 내 공급망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미 백악관은 이날 “미국은 해외의 원재료와 바이오 생산에 지나치게 의존해왔고, 생명공학 등 주요 산업의 오프쇼어링(생산기지 해외 이전)은 원료 의약품 등 주요 물질에 대한 수급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오공학 기반 생산 가치가 2030년 30조달러(약 4경12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번 행정명령의 배경에는 중국 바이오 산업의 급성장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중국 제조 2025′에 바이오를 전략적 신사업으로 지정해 집중 육성해왔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BCG에 따르면, 2010~2020년 중국에선 바이오 기업 141곳이 새로 생겨났다. 그전 10년간 신설 기업 79곳의 배 가까운 숫자다. 지난 30년간 미국과 유럽, 일본은 신생 기업 수가 감소세에 접어든 반면 중국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중국 내 바이오 산업 단지도 2016년 400곳에서 2020년 600곳으로 50%나 증가했다.

과거 중국은 제네릭(복제약)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중국 바이오 산업은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중국에서 개발돼 승인된 코로나 백신은 8종이며 31개 후보 물질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 중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빠르게 진화하는 규제 환경과 혁신 생태계로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국내 바이오 업계 “위기이자 기회”

미국은 세계 바이오 의약품 시장 점유율이 61%로 최대 시장이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로선 미국 시장 공략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국보다 비싼 공장 건설 비용과 운영비, 인건비 때문에 미국 내 생산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미국 내 공장 부지를 검토해왔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향후 25년간 암 사망률 절반으로”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각)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존 F 케네디 도서관·박물관에서 25년 이내에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기존의 절반 이하로 낮추는 ‘캔서 문샷’(cancer moonshot) 프로젝트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전기차와 반도체 등 분야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내용의 법안에 대해서도 홍보했다. /AP 연합뉴스

이제 현지 진출 외에 대안이 없어지게 된 셈이다. 미국 기업 투자나 인수가 대책으로 거론된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있는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인수하면서 현지 위탁생산 시장에 진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분야처럼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이 뒷받침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기업들을 따돌릴 절호의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대표적인 위탁생산 기업인 우시바이오의 경우 이번 조치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북미 지역 매출이 50%를 넘지만 최근 미중 관계를 감안하면 미국 내에 생산 시설을 짓기도 힘든 상황이다. 13일 우시바이오의 주가는 20% 폭락한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3.8% 올랐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미국 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면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며 “우리 정부와 기업이 지혜를 모아 이번 행정명령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