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우우우웅….”
특수 차량 하단에 달린 원형 판이 서서히 내려와 지면에 닿자 굉음과 함께 진동이 발생했다. 1㎞ 아래 지층 구조를 살피기 위해 최대 13t 압력에 맞먹는 힘으로 탄성파를 일으키는 장면이다. 지난 16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본관 맞은편 평지에서 ‘진30(GIN 30)’이라 부르는 탐사 장비가 지하로 탄성파를 내보내고 있었다. 250㎐(헤르츠) 이내 주파수로 보낸 탄성파가 땅속 깊이 내려가 반사 또는 굴절돼 돌아오면, 광섬유 센서가 포착해 단층이 어디에 있는지 등 지질 구조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박권규 지질자원연구원 기후변화대응연구본부 이산화탄소(CO₂) 지중저장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탄성파로 확인한 지하 심부(深部) 구조는 CO₂ 저장이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를 찾는 데 활용된다”고 했다.
◇ CO₂ 저장 기술로 기후변화 대응
이산화탄소 저장은 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라고 하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은 탄소 중립을 실현해가는 현실적 대안으로 세계가 주목해온 기술이다.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층 깊은 곳이나 해저에 저장하기 위한 것이다. 지질자원연구원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부지를 탄성파 탐지 기술로 찾고, 이산화탄소 주입 때 지중 압력 변화 등을 예측하는 연구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지난 16일 지질연 기후변화대응연구본부에서도 암석 시료에 CO₂를 주입해 유동(流動)과 분포, 압력 변화를 예측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산화탄소 주입에 따른 지중 균열과 유출을 막고 안전하게 저장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급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해법으로 CCS 기술이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산업계에서는 현실적 대안으로 꼽고 있다. 지질연은 서해안 125~165㎞ 지점에서 대심도(大深度) 탐사 시추를 통해 해양 지중 CO₂ 저장 후보지를 찾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우주 현지 자원 활용(ISRU) 기술 개발
지질연은 지질 조사와 지하자원 개발 등 종전 임무에 머무르지 않고, 달과 화성 등 지구 밖 자원 탐사·활용으로 외연을 넓혔다. 국토 중심의 자원 개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우주 자원 개발에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과 협력해 우주 현지 자원 활용(ISRU) 기술을 개발 중이다. ISRU(In-situ Resource Utilization)는 물, 산소, 추진체 연료 등을 추출하는 것을 비롯해 현지 자원을 활용, 가공, 저장하는 모든 과정의 기술을 의미한다. 김성원 지질연 국토지질연구본부장은 “달에 매장된 헬륨-3는 지구에서 1만년 동안 쓸 수 있을 정도로 추정된다”며 “선(先)점유자가 개발권을 갖는 우주 자원을 놓고 국가 간 전쟁이 과열되고 있다”고 했다. 지질연은 우주 자원의 성분 분석과 선별, 추출, 처리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에 실은 감마선 분광기도 지질연이 개발한 것이다. 지질연의 분광기는 산소, 철, 티타늄 등 달 표면의 원소 지도 제작에 쓰인다. 달 극지 자원 조사에 쓸 중성자 분광기와 레이저 유도 분쇄 분광기 개발에도 착수했다. 지질연은 2031년 발사를 목표로 추진 중인 한국 최초 달 착륙선에 탑재할 월면토(月面土) 자원 추출기도 개발할 계획이다.
다음 달 지질연은 우주 지질 연구와 ISRU 기술 개발 임무를 고려해 국토지질연구본부 명칭을 국토우주지질연구본부로 바꾸고, 본부 산하에 우주자원개발을 전담할 우주개발센터를 신설한다. 이평구 지질연 원장은 “우리나라가 지구에서는 자원 빈국으로 꼽히지만 우주에서는 자원 부국이 될 수 있다”며 “달 자원 탐사와 활용 기술을 고도화해 우주 자원 확보의 기술적 우위를 선점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