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정부가 지난 9일 팔라완섬과 민도로섬 인근에서 발견한 우주 발사체 잔해를 공개했다. 일부 잔해에는 중국 오성홍기 표시가 있었다. 필리핀 우주청은 이것이 지난 4일 태평양으로 추락한 중국 우주발사체 ‘창정 5B호’ 잔해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우주 잔해물 추락으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을 경우 보상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세계가 불안해하며 지켜봤던 중국의 우주발사체 ‘창정 5B호’ 잔해가 지구로 추락한 것을 계기로 우주 잔해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창정 5B호는 중국이 지난달 31일 우주정거장의 실험실 모듈 멍톈(夢天)을 쏘아 올릴 때 사용한 발사체로 상단부 길이(31m)가 10층 건물 높이 이상인 데다 무게도 21t에 달해 잔해 추락을 우려한 각국이 궤도를 추적해 왔다.

◇0.1㎝ 이상 우주 잔해물 1억여 개

유럽우주국(ESA)에 따르면, 인류가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1957년부터 지금까지 성공한 우주 발사체는 6300여 개다. 이를 통해 우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 1만4550여 개인데 현재 지구 궤도에 남아 있는 것은 9610여 개다. 이 가운데 약 30%(2810여 개)는 통제 불능 상태로 사실상 우주에 방치돼 있다. 이들이 폭발 또는 충돌하거나 부서져 수많은 잔해물(쓰레기)로 지구 궤도를 떠돌고 있다.

ESA는 10㎝ 이상 우주 잔해물(debris)이 3만6500여 개인 것으로 추정한다. 1~10㎝ 잔해는 100만개, 0.1~1㎝ 잔해는 1억3000만개가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언젠가 떨어질 수많은 우주 잔해물을 머리 위에 얹어 놓은 셈이다.

◇고도가 낮아지는 이유

제대로 작동 중인 인공위성이 지구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궤도를 도는 원심력과 지구 중력이 평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반면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은 원심력을 유지할 만한 속도를 내지 못해 서서히 고도가 낮아진다. 이 경우 중력뿐 아니라 태양폭풍 등 태양의 활동도 영향을 끼친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우주물체의 궤도 수명은 고도 500㎞보다 높이 있으면 10년 이상 머물 수 있지만 300㎞ 고도로 내려간 경우는 수개월 안에 지구로 추락한다. 고도 120㎞ 지점의 우주 잔해는 90~135분 안에, 78㎞ 지점에선 대기 마찰로 분해된 잔해가 수많은 파편으로 6~30분 안에 지상으로 추락한다. 이때 흩어진 잔해가 떨어지는 범위가 최대 2000㎞×70㎞에 달한다. 넓게는 남한 면적의 1.4배가 사정권이 되는 셈이다. 이는 우주 잔해물의 추락 지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의미다.

◇군집위성 급증…“추락 잦아질 것”

추락하는 우주물체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속도는 시속 2만㎞를 훌쩍 넘지만, 대기 마찰로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며 지상에 떨어질 때 평균 속도는 시속 180㎞ 정도다. 잔해물 크기에 따라 시속 30~300㎞로 다양하지만, 인구 밀집 지역으로 추락할 경우 심각한 인명, 재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1978년 당시 소련의 정찰위성 코스모스 954호 잔해물이 캐나다 북서부로 떨어졌을 땐 무려 600㎞에 이르는 구간에서 파편들이 발견됐고, 일대는 방사능 물질로 오염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 우주 잔해물의 대부분은 지구 표면적의 71%를 차지하는 바다로 떨어졌지만, 스타링크처럼 지구 저궤도의 군집(群集)위성이 급증하는 추세여서 앞으로 우주 잔해물 추락 빈도가 잦아지고 지상 추락 우려도 커질 전망이다. 지난 7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진은 ‘네이처 천문학’에 앞으로 10년 동안 우주 발사체 잔해물로 사상자가 1명 이상 발생할 확률이 10%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엔 가이드라인 있지만 강제성 없어

우주 잔해물에 관한 국제사회 규약으로는 유엔 산하인 ‘외기권(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위원회’가 만든 우주폐기물(쓰레기) 경감 가이드라인, 우주활동의 장기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가이드 라인이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 정부도 2020년에 ‘우주쓰레기 경감을 위한 우주비행체 개발 및 운용 권고’를 마련했다. 발사와 궤도 투입 단계는 물론이고, 우주비행체의 임무부터 폐기 단계까지 모든 과정에서 우주쓰레기 생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어 지키지 않는 나라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주 잔해물 추락 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국제적 합의 사항이 없어 실효성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