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USB-C 타입 아이폰’이 2021년 이베이 경매에서 8만6001달러(1억여 원)에 최종 낙찰됐다. 1000달러 정도 하는 스마트폰이 100배 가까이 높은 가격에 팔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는데, 유럽에서는 올해 6월에 공식적으로 제조사에 상관없이 2024년까지 유럽 내 모든 신규 휴대 기기의 충전 단자를 ‘USB-C’ 타입으로 통일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유럽에서는 충전기가 하나로 통일되면 한 해 발생하는 전자 폐기물 1만1000t을 줄이고, 2억5000만유로(약 3400억원)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의 결정에 사용자들 관심은 애플이 어떤 공식 반응을 내놓을지로 향했다. 중요한 쟁점은 과연 큰 팬덤을 확보한 공룡 기업 애플이 자체 충전 단자로 큰 수익을 얻었는데 이를 포기하고 유럽의 규제를 따를 것인가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개최한 테크 라이브 행사에서 그 해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레그 조쉬악 애플 월드와이드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애플은 유럽연합(EU) 규정 준수를 위해 아이폰의 라이트닝 케이블을 USB-C로 전환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일상생활에 전자 기기가 늘어남에 따라 충전 단자를 통일하는 식의 환경 규제를 통해 전자 폐기물을 줄이는 것은 반길 만한 소식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강화되는 환경 규제로 여러 산업의 흥망성쇠가 나타나는 사례를 최근 들어 자주 볼 수 있다. 이제는 생명과 관련된 의료 기기도 환경 규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의료 영상 기기는 초음파 진단기다. 사용 건수가 1600만회에 이른다. 이와 관련된 건강보험 진료비도 한 해 1조5000억원에 이른다.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초음파 진단 기기는 의료기 수출 품목 가운데 2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초음파 의료 기기도 환경 규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초음파 영상은 변환기에 의해 초음파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꿔 영상화한다. 초음파 변환기는 납(Pb)·지르코늄(Zr)·티타늄(Ti) 등으로 구성된 압전(壓電) 소자 물질로 대부분 만들어진다. 이 세 가지 구성 요소 첫글자를 모아 PZT라 부른린다. 이는 1952년 도쿄공업대학에서 개발돼 현재까지 90% 이상의 초음파 변환기에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70년간 확고했던 지위를 머지않아 내려놓아야 할 상황이 왔다. 유럽연합의 ‘특정 유해 물질 사용 제한에 관한 규정(ROHS)’에 따라 2023년 7월부터 유럽에서는 더 이상 ‘납’이 함유된 체외 진단 의료 기기 제조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제가 가능하게 된 배경은 납이 함유된 압전 물질 대신에 반도체 제조 공정을 기반으로 한 미세 전자 기계 시스템(MEMS) 초음파 소자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미국을 선두로 유럽, 일본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 동안 꾸준한 연구와 투자가 이뤄진 결과다. 우리도 한양대학교,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이를 선도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환경 규제를 통해 대체된 MEMS 초음파 소자가 기존 초음파 변환기로는 구현이 어려운 새로운 분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피부 표면에 붙일 수 있는 초음파 패치, 뇌 혈류량 측정을 통한 기능성 초음파 뇌영상, 알약 형태로 만든 초음파 내시경, 더 나아가 3차원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혈관 내 초음파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기기는 기존 초음파 진료의 한계를 넘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회 용기 사용 제한 등 환경 규제로 인한 직간접 피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변화의 기회를 과학기술로 잡을 수 있다면 국가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세계가 추구하는 보편적 인류 발전과 행복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