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미국 시카고 컨벤션 센터 ‘매코믹 플레이스’에서 열린 북미영상의학회(RSNA) 전시장에 인공지능(AI) 기업들이 모여 있는 모습. 올해 참가한 AI 기업은 전체 참가 기업의 18%로, AI가 의료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시카고=유지한 기자

지난 28일(현지 시각) 올해 북미영상의학회(RSNA)가 열린 미국 시카고 컨벤션센터 ‘매코믹 플레이스’. 이날 독일 제약사 바이엘의 인공지능(AI) 사업부 칼란틱의 부스에서 회사 관계자가 “영상의학 전문의들은 8시간의 근무 시간 동안 평균 3~4초마다 사진을 판독한다”며 칼란틱의 AI(인공지능) 플랫폼을 소개했다. 이 AI 플랫폼은 클릭 한 번으로 흉부 CT 사진에서 이상 가능성이 큰 지점을 파악해 의사에게 알리고 의사가 최종적인 판단을 해준다. 시연한 AI는 68분 만에 2451건의 영상 분석을 완료했다. 바이엘 디지털솔루션 아시아태평양 책임자 폴 제이머스는 “현재 의료 AI가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5~10년 내에 더 많은 병원들이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산업에서 AI의 위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올해 108회를 맞은 RSNA는 영상의학 관련 연구 발표나 CT(컴퓨터 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 기기 등 주요 의료기기를 전시하는 세계 최대 학회지만 올해엔 AI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학회에 AI 기업 참여가 늘어나고 있고, AI 회사들이 경진하는 챌린지도 진행됐다. 의료 AI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기술적인 한계와 의사들의 거부감으로 도입이 더뎠던 AI가 의료 시장에 점차 확대되고 있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27일부터 5일간 열리는 올해 학회에는 의학·산업계에서 5만여 명이 방문할 것으로 추산된다.

◇AI 기업 참여 작년의 2배

이번 학회에는 AI 기업이 역대 최다 참여했다. 전체 참가 기업의 18%에 달하는 207곳이다. 8년 전인 2014년에는 AI 기업이 한 곳도 없었지만, 점차 증가하며 올해는 작년(100곳)보다 두배 넘게 늘었다. 국내 기업들도 10여 곳이 참가했다. AI의 비중이 높아진 의료 산업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글로벌 의료 AI 시장은 2018년 21억 달러(약 2조8000억원)에서 2025년 362억 달러(약 48조원)로 연평균 50%의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의료 AI가 대세가 되면서 전통 의료기기 업체들과 IT 기업들도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학회 현장에서 미국 GE헬스케어와 네덜란드 필립스, 일본 후지필름 등 주요 업체들은 AI가 적용된 의료기기를 전시했다. 미국 대표 의료 기업 GE헬스케어는 학회에 차린 13개의 부스 중 절반이 넘는 7곳이 AI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들이었다. 딥러닝으로 학습한 AI가 영상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정해줘 진단 시간을 최대 50% 단축하는 제품 등이다. 후지필름은 비전문가가 AI 기술로 용종을 찾을 때의 정확도를 전문가 수준까지 구현했다. 인도 의료기기 유통 업체 ‘산라드’의 제품관리자(PM) 마이루드 운니는 “많은 고객(병원)들이 AI가 적용된 의료기기에 관심을 가지고 문의를 해온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AI로 심장의 이상 부위를 정확히 진단하는 초음파 기기를 선보였다.

글로벌 AI 스타트업들의 기술도 주목받았다. 미국 큐어메트릭스의 AI는 현재 유방조영술로 판단하기 어려운 의심스러운 영역을 파악해 의료진에게 알려주며, 미국 래피드AI는 AI를 활용해 뇌동맥류 진단을 돕는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진료 과정에서 의사보다 뛰어난 AI

국내 의료 AI 기업들도 기술력을 앞세워 존재감을 드러냈다. 루닛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AI가 실제 의사와 똑같이 검진해서 유방암을 찾아내는 데 활용됐다고 발표했다. 기존 연구들은 AI가 진단이 끝난 데이터로 질병 여부를 판단했다면 새로운 연구는 진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까지 포함한 것이다. 스웨덴에서 유방암 검진을 받는 5만명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AI가 의사보다 암을 더 잘 발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뷰노는 AI를 기반으로 CT·MRI 등 의료 영상을 분석해 의료진의 진단을 돕는 소프트웨어를 전시했고, 박상준 서울대 의대 교수가 창업한 메디컬아이피는 단층 촬영으로 보기 어려운 장기를 3차원으로 분석하는 AI 기술을 내세웠다.

글로벌 기업들도 한국 의료 AI 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루닛은 GE헬스케어와 후지필름, 필립스와 협력관계를 맺고 주요 의료기기에 AI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한 해외 AI 스타트업 창업자는 “한국에는 흥미로운 AI 기업들이 많고 몇몇 기업들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