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정보기술) 분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바이오 분야에서도 토종 스타트업들이 과감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한국이 강점을 지닌 IT와 융합을 통해 신약과 디지털 치료제 개발, 진단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적 성과를 내고 있다.

레고켐바이오는 지난달 미국의 생명공학업체 암젠과 최대 1조6050억원 규모의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LG화학 출신 김용주 대표가 2006년 창업한 레고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신기술을 가지고 있다. ADC는 약물에 특정 암세포의 항원 단백질을 공격하는 항체를 붙인 것으로, 유도미사일처럼 암세포만 찾아가 약물을 전달해 죽일 수 있다. 레고켐바이오는 ADC 분야에서 지금까지 총 12건의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고 누적 계약 금액만 6조5000억원에 이른다.

2020년 설립된 시프트바이오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세워진 기술 출자 회사다. 시프트바이오는 약물 전달체 ‘엑소좀’을 이용해 원하는 부위에 정확히 치료 물질을 투입하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남기훈 부대표는 “간 이식밖에 방법이 없는 간부전 치료제를 개발해 내년 미 식품의약국(FDA) 임상 시험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희소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제약사들이 임상 시험에서 실패한 경험이 쌓이면서 국내 바이오 산업의 체력이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도 바이오 기업들에 강력한 무기다. 의료 AI 기업 루닛은 AI를 이용한 영상 판독 기술로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암의 위치를 찾아낸다. 홍콩·몽골·브라질을 포함해 40국에 AI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AI 신약 개발사 스탠다임은 AI를 통해 시간당 400~600편 논문을 읽고 수만개의 후보 물질 가운데 최적을 가려낸다. 이를 통해 최소 몇 년이 걸리는 신약 개발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국내 대형 제약사뿐 아니라 유럽의 빅파마, 미국 바이오테크와도 신약 개발을 하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도전적이고 젊은 바이오 창업자들이 IT 기술을 결합하면서 한국 바이오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정부의 지원과 민간의 투자만 잘 받쳐준다면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업들이 곧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