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코로나 백신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은 11.4개월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1월 개발에 착수해 그해 12월에 사용 허가를 받았다. 보통 백신이 나오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지만 모더나는 1년도 채 안 돼 개발한 것이다. 이처럼 역사상 전례 없는 속도로 백신이 개발된 배경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모더나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만 해도 직원 수가 1000명도 되지 않는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더나에는 방대한 mRNA(유전물질)를 한 번에 분석·예측할 수 있는 AI 시스템이 있었다. 이를 통해 모더나는 중국 당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정보를 발표한 지 42일 만에 백신 후보 물질을 만들어 냈다. 3만명의 대규모 임상 시험 데이터 수집·분석에도 AI가 활용됐다. 데이비드 존슨 최고 데이터 및 인공지능 책임자는 작년 말 MIT테크놀로지리뷰와 인터뷰에서 “AI를 통해 데이터 질을 높이고 결과를 예측해 신속하게 백신 개발을 수행했다”고 했다.
AI가 의료와 제약 분야를 혁신하고 있다. 신약 개발뿐 아니라 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활약하며 인류의 난치병 극복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앞으로 의료분야에서 AI 침투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도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이 화두였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ZS의 최고경영자(CEO) 프라탑 케드카르는 세계경제포럼에서 “환자 데이터 폭증과 기술 르네상스가 AI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며 “AI는 사람이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는 AI를 이용해 빠르게 임상 환자를 모집했다. 임상 참가자 모집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어려운 단계 중 하나다. 화이자는 AI로 아직 코로나가 퍼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감염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찾았다. 덕분에 4개월 만에 6국에서 4만6000명을 모집했다. 사람이 하면 오래 걸릴 임상 데이터 분석에도 AI가 적용됐다. 결국 화이자는 10.8개월 만에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 화이자의 최고 디지털 및 기술책임자인 리디아 폰세카는 지난해 한 인공지능 콘퍼런스에서 “디지털 데이터와 AI를 화이자의 전체 밸류체인(가치사슬)에 적용하고 있다”며 “수퍼컴퓨터와 AI를 활용해 유망한 화합물 구별을 가속화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AI는 신약 개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있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10~15년이 걸리고 비용도 2조~3조원이 든다. 5000~1만 개의 후보물질을 발굴하면 1개만 시판될 정도로 성공 확률도 낮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AI는 한 번에 100만 건 이상의 논문과 100억 개의 화합물 탐색이 가능하다”며 “연구자 수십 명이 1~5년간 해야 할 일을 하루 만에 진행할 수 있다”라고 했다.
AI는 코로나뿐 아니라 인류의 질병 극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글 딥마인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를 이용해 100만 종 2억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했다. 지구상에 알려진 거의 모든 단백질이 포함된다. 단백질 구조는 세포의 기능을 결정해 신약 개발에 필수적이다. 메타(옛 페이스북)도 AI로 단 2주 만에 6억 개가 넘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했다.
진단 분야에서도 AI가 대세가 되고 있다. 의료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영상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정해 진단 시간을 크게 단축하고 조기 진단도 가능하다. 미국 시더스 시나이 병원은 전통적인 진단 방식보다 최대 3년 빠르게 췌장암을 진단하는 AI를 개발했다. 췌장암은 5년 내 생존율이 10% 미만이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우울증, 당뇨병, 천식 같은 만성질환의 조기 진단에도 AI가 활용된다. 중국 스타트업 보이스헬스테크의 AI는 30초 분량의 음성을 듣고 82% 정확도로 우울증을 진단한다. 캐나다 스타트업 윈터라이트는 미국 바이오 기업 제넨텍과 함께 음성으로 알츠하이머를 감지하고 진행 정도를 추적하는 AI를 개발했다. 호흡이나 움직임으로 파킨슨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AI도 속속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