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불면증을 치료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 기기가 처음으로 허가됐다. 디지털 치료 기기는 기존 약이나 주사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우울 장애나 ADHD(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 등 다양한 질환 치료에 디지털 치료 기기가 활용될 전망이다. 국내 의료 기술 산업계에서는 “혁신 의료 기술을 산업화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 평가와 함께 의료 산업 전반에 걸쳐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5일 헬스케어 전문 기업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증상 개선 소프트웨어 ‘솜즈(Somzz)’를 국내 첫 디지털 치료 기기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솜즈는 불면증을 야기하는 습관이나 행동을 교정해 치료 효과를 내는 소프트웨어 의료 기기다. 환자가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한 뒤, 앱에서 제공하는 6단계 프로그램을 6~9주간 따라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앱에서 본인이 침대에 누운 시간이나 잠든 시간 등을 수면 일기로 적으면 이를 평가해 피드백을 제공하고, 불규칙한 수면 습관을 개선하거나 불면증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게끔 유도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수면의 질을 높이고 불면증을 악화시키는 습관을 개선하도록 도와준다.

◇10종 질환으로 허가 품목 확대 계획

식약처는 솜즈의 치료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해당 업체가 제시한 국내 임상 시험 기관 3곳에서 6개월간 실시한 임상 시험 결과를 검토했다. 그 결과 솜즈 사용 후로 불면증 심각도 평가 척도가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정신건강의학과와 가정의학과 등 전문가로 구성된 의료 기기 위원회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자문도 받았다.

솜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의사의 처방을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솜즈를 통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면 약물 치료로 넘어가게 된다. 다만 건강보험 급여 적용 여부나 처방 시작 시점 등을 보건복지부가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사용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식약처는 불면증 치료에 더해 ADHD와 우울 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등 약 10종의 질환에 디지털 치료 기기를 적용할 수 있도록 오는 2027년까지 허가 품목을 늘려갈 계획이다.

◇”혁신 기술 규제 정비 확대돼야”

이번 국내 식약처의 디지털 치료기기 첫 허가로 혁신 기술의 사업화에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업 6곳에서 불면증과 불안 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등 여러 디지털 치료 기기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17년 디지털 헬스기업 페어세러퓨틱스의 약물 중독 치료 앱을 처음으로 허가한 이후,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 기기가 사용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 기기 시장 규모는 2016년 16억7000만달러에서 2025년 89억4000만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계에서는 혁신 의료 기술 규제에 대한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기업들이 국내에 관련 규정이 없거나 의사 단체들의 반발 등으로 인해 해외로 눈을 돌린 사례가 적지 않았다. LG전자는 2020년 전자식 마스크를 개발했지만 국내에 허가 기준이 없어 해외에 먼저 출시해야 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2022년 12월에서야 국내 출시가 이뤄졌지만 현재는 정부가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를 한 상황이다. KT도 원격 의료 플랫폼을 국내보다 베트남에 먼저 출시할 계획이다. 한 디지털 치료 기기 업체 창업자는 “인공지능(AI) 의료 기기도 국내 규제가 정비돼 있지 않아 사업화에 실패한 기업들이 해외에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며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했더라도 국내에서 사용하지 못하는데 해외 수출이 쉽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