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융합기술연구소. 사람 손가락 모양의 로봇 두대 앞에 막대 2개와, 막대가 들어가는 구멍이 뚫린 원통 2개가 놓여 있었다. 인공지능(AI)이 탑재된 로봇 손은 스스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물체를 집어 빠르게 조립하기 시작했다. 로봇 손이 물체를 조립하는 데 걸린 시간은 2분 남짓. 연구진이 여러 차례 막대와 원통을 무작위로 가져다 놓아도 로봇은 척척 조립해 냈다. 생기원 AI·로봇연구부문 배지훈 박사는 “로봇이 사람처럼 구멍에 맞는 방향을 맞춰 넣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라며 “AI가 스스로 판단해 최적화된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기원은 사람을 안전하게 돕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다양한 도구를 잡고 작업할 수 있는 로봇 기술뿐 아니라 작업자를 돕는 허리 보조 웨어러블 로봇, 가사 돌봄 서비스 로봇, 마비 환자 재활용 로봇, 스마트 팜용 로봇 등이다. 특히 사람 손가락 모양 로봇 손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된다.
◇로봇 손 하나로 다양한 작업 수행
배 박사 연구진이 개발한 로봇 손은 일반적인 집게 모양의 로봇과 다르다. 실제 사람처럼 엄지손가락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배 박사는 “침팬지는 엄지손가락이 짧아 사람과 달리 도구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로봇은 손가락 4개나 3개로도 충분히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로봇 손은 다양한 물건을 잡을 수 있다. 딱딱한 캔뿐만 아니라 얇은 재질의 종이컵까지 망가트리지 않고 쥘 수 있다. 재질뿐 아니라 둥근 과일 같은 어떠한 모양도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다. 사람이 물건을 억지로 흔들어도 로봇 손은 계속 물건을 움켜쥔다. 또한 20㎏의 무게까지 들 수 있다.
다른 특징은 로봇 손에 ‘힘 센서’가 없다는 것이다. 로봇 손에 달린 카메라로 먼저 물체를 인식한다. 미리 학습한 정보로 대략 어떤 물건인지 파악할 수 있다. 로봇 손이 막대를 구멍에 넣을 때 오차가 있어도 미끄러지듯 구멍에 막대를 넣을 수 있다. 마치 사람이 눈을 감은 채 손끝의 감각으로 물건을 조립하는 원리다. AI가 적용되면서 로봇 손은 최적화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실제로 로봇 손은 설계도 없이도 37분 만에 의자를 조립하는 데 성공했다.
로봇 손은 공장의 다양한 공정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개의 손가락을 가진 연구용 로봇 손 기술은 기업에 이전돼 구글·마이크로소프트·현대차 등 전 세계 대학과 기업 등에 150대가 판매됐다. 배 박사는 “공정마다 맞춤형으로 기계를 쓸 필요 없이 로봇 손 하나만으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장 관리와 효율 측면에서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작업자 돕는 웨어러블 로봇
이 외에도 생기원에서는 사람을 돕는 로봇 기술을 연구 중이다. 웨어러블 로봇 ‘스텝업’은 작업자의 허리나 다리 등 특정 부위에 힘이 가해질 때마다 근력을 보조해 신체가 받는 하중을 분산시켜준다. 작업자는 무리한 힘을 쓰지 않게 되고 육체적 피로감도 줄어든다. 스마트팜 로봇도 상용화했다. 정해진 선로를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자율주행 플랫폼 위에 원하는 용도의 작업대 로봇을 교체해가며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운송 작업대는 집하장까지 무인 이송이 가능하고 방제 작업대는 농약의 자동 분사를, 리프팅 작업대는 높은 곳의 열매 수확과 온실 시설 관리를 도와준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 작업도 로봇들이 수행한다. 생기원은 바다에서 초속 1.2m로 4~6시간 운용할 수 있는 무게 250㎏급 해양 쓰레기 수거 로봇을 개발했다. 자율주행과 동시에 1㎞ 떨어진 곳에서도 원격조종이 가능하다.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구할 로봇도 있다. 이 로봇은 최대 200㎏에 달하는 장애물을 옮기거나 22㎜ 굵기의 철근을 절단할 수 있다. 시멘트 덩어리를 깨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어 매몰된 인명을 굴착기보다 빨리 구조할 수 있다.
이낙규 원장은 “생기원 로봇그룹은 지난 20년간 사람의 작업을 보조하는 로봇에서 사람과 함께 협력하는 로봇 개발로 발전해 왔다”며 “AI를 적용한 첨단 제조로봇 개발을 확대해 중소중견기업 생산 현장에 확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