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대전광역시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초전도 핵융합 연구 장치(KSTAR)’ 주장치실. 가로 37m, 세로 50m, 높이 30m로 축구장 4분의 1 크기에 기둥이 하나도 없는 공간에 은색 원통 구조물이 설치돼 있고, 가열·진공 배기·헬륨 분배 장치가 복잡하게 연결돼 있었다. 도넛을 포개놓은 듯한 원통 구조물이 ‘지상의 태양’ 또는 인공 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로의 핵심 ‘KSTAR 주 장치’다. 지름 9.4m에 높이 9.6m, 무게 1000t에 이르는 이 장치에서 무려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가 생성된다. 플라스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떨어져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를 뜻한다. 핵융합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에너지 효율이 원전보다 3배 높아 전기 요금을 대폭 낮출 수 있다. 탄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발생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에서 각국이 ‘꿈의 청정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발전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1억도 플라스마 100초 유지가 관건”
원자력 발전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핵이 분열하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핵융합 발전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하면서 헬륨으로 바뀔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핵융합 발전의 연료가 되는 중수소를 바다에서 구할 수 있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은 핵융합을 일으켜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한지 실증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해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LLNL)가 핵융합 반응 실험에서 2.05메가줄(MJ·에너지의 단위)을 투입해 3.15MJ을 얻는 데 성공했을 당시, 세계가 주목한 이유는 생산된 에너지양은 작지만 핵융합 발전의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담긴 용기에 거대 레이저 192개를 쏴 핵융합을 일으킨 미국 LLNL의 레이저 방식과 달리, 우리나라 KSTAR는 1억도 이상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가두는 ‘토카막(tokamak)’ 방식이다. 토카막은 플라스마를 가두는 원형 도넛 모양의 진공 용기라는 뜻의 러시아여 약자다.
22일 살펴본 우리나라 KSTAR는 토카막 핵융합 방식에서 세계 최고다. 핵융합연구원은 2018년 플라스마 온도 1억도를 달성했고, 2020년 20초 연속 운전에 성공했다. 2021년에는 1억도 유지 시간이 30초에 도달했다. 세계 최고 기록을 잇따라 갈아치운 것이다. 학계에서는 1억도 이상 플라스마를 5분(300초) 이상 유지하면 계속 운전이 가능하다고 본다. 정기정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한국사업단장은 “5분 이상 유지는 연속 운전이 가능한 기술 수준을 의미한다”며 “KSTAR는 내년에 100초 이상 유지하고 2026년 300초 이상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각국 선점 경쟁, 2050년 대용량 전력 생산
과기정통부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이날 KSTAR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23일 국가핵융합위원회의 ‘핵융합 실현을 위한 전력 생산 실증로 기본 개념’ 안건 심의를 앞두고, KSTAR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알리기 위해서다. 국가핵융합위원회는 23일 핵융합 실증로 설계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이번 상반기에 꾸려 2026년까지 예비 개념 설계를 마치기로 결정했다. 실증로의 최대 전기 출력은 500㎿(메가와트) 이상으로 정했다. 정부는 2050년 대용량 전력 생산을 기대한다.
이미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핵융합 상용 발전소로 가기 위한 실증로 설계에 착수했고, 민간 스타트업들도 핵융합 발전을 사업화하기 위해 속속 뛰어들었다. 국제적인 공동 연구는 프랑스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이끌고 있다. 2025년 준공을 목표로 한국·미국·유럽 등 7국이 회원국으로 참여 중이다. 유석재 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은 “우리나라가 핵융합 발전소를 운영하려면 지금의 골든 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며 “핵융합 발전이 뒤처지면 에너지는 물론이고 안보, 기술 패권 경쟁에서도 밀릴 우려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