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비만 치료제 ‘위고비’ 신드롬이 일고 있다. 비만을 미용이 아닌 질병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할리우드 스타뿐 아니라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위고비로 감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신약을 개발한 노보 노디스크의 연구 결과, 위고비는 비만 환자의 체중을 약 15% 감량하는 효과를 냈다는 것. 이 덕분에 이 회사의 주가는 전 세계적인 증시 불황 속에서도 1년 새 40% 넘게 올랐다.
비만 치료제가 제약업계의 차세대 블록버스터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신약들이 속속 등장하며 항암제 시장까지 넘볼 기세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 시장은 지난해 24억달러(약 3조1000억원)에서 2030년 540억달러(약 70조5000억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암젠, 리제너론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며,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신약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호에 비만 치료제 신약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신약들이 전 세계 비만을 종식할 수 있다”며 “(비만 치료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하며 수백만 명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고 전했다.
◇체중 22.5% 감량 신약도 곧 출시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가장 앞선 곳은 위고비 개발사 노보 노디스크다. 위고비가 인기를 끈 것은 효과와 편의성 때문이다. 기존 치료제들의 체중 감량 효과는 5~10% 정도였고, 노보 노디스크의 기존 비만 치료제 ‘삭센다’는 매일 1회 주사를 놔야 했다. 위고비는 이보다 나은 효과와 더불어 주 1회만 주사를 맞으면 된다. 이 때문에 위고비와 같은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까지 인기를 끌어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원래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져 발병하는 제2형 당뇨병을 치료하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인체 내 GLP-1(Glucagon-like peptide-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이라는 호르몬에 작용해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고 포만감을 높인다. 배고픔을 줄여 체중 감량을 유도하는 원리다. 68주간 진행된 임상 시험에서 평균 15%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2021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우리나라에는 연말이나 내년 초쯤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고비보다 강력한 비만 치료제도 곧 출시된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마운자로’라는 비만 치료제를 이르면 올해 말 출시할 예정이다. 임상 3상 시험에서 72주 차 체중 감소율이 최대 2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약은 GLP-1뿐 아니라 다른 호르몬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폴리펩타이드·Gastric inhibitory polypeptide)에도 동시해 작용해 체중 감량 효과를 극대화한다. 미국 암젠도 지난해 말 임상 1상에서 비만 환자들이 12주 만에 체중을 최대 14.5% 감량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높은 비용과 부작용은 한계
투자업계는 조만간 비만 치료제가 매출 상위권에 있는 항암제들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2031년까지 위고비와 유사한 작용을 하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1500억달러(약 196조원)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1년 매출이 약 1850억달러(약 241조원)에 달하는 암 치료제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모건스탠리도 “비만 치료제가 제약업계의 다음 세대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이 비만 치료제들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장기간 투약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데다 약을 끊는 순간 원래 체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고비 주사를 중단한 이후 1년 안에 빠진 체중의 3분의 2 수준을 회복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미 보고된 설사·구토·복부 통증 외에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나타낼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위고비는 월 1350달러(약 176만원) 수준이고, 현재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마운자로는 월 1540달러(약 201만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부자들을 위한 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