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전 세계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명작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신을 사랑한 소년이 노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이야기로, 인생의 참된 가치를 따스한 감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이 책이 알려주는 ‘사랑과 관용’에 대한 교훈을 다시금 꺼내보면서 이 책의 주인공인 나무의 삶을 과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어떨까 한다.
나무는 사실 지구의 주인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냈다. 나무는 약 2억4500만년 전부터 진화를 거듭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생성된 탄수화물로부터 만들어지는 물질들로 잎, 줄기, 뿌리를 지탱한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다양한 영양분들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구조와 껍질이라는 방패를 하나하나 만들어냈다. 또한 엄청난 양의 씨앗을 날려 언제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왔다.
약 500만년 전에 수렵과 채집을 생존 수단으로 삼았던 최초의 인류가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 나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류는 나무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나무는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제공하고 다양한 열매와 목재를 제공하는 한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대기오염을 개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인류는 나무를 건축재, 연료, 종이, 섬유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으며 대량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가공 기술의 개발과 함께 나무는 산업의 중요한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여 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유발된 온실가스 배출, 자원 고갈,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해 지구의 환경과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산업화된 문명을 유지하면서 지구를 구하는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나무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무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로 자신을 지탱하고, 내구성을 높이는 셀룰로오스와 리그닌과 같은 성분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또 다른 선물이다. 이러한 성분들을 분해하면 포도당, 자일로스 등의 당류와 페놀류 성분을 얻어낼 수 있는데, 작은 톱밥 하나에도 골고루 들어 있는 이 성분들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연료나 친환경 신소재 등으로 전환될 수 있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바이오 에탄올, 바이오 디젤은 옥수수 전분, 팜유 등 나무가 제공하는 성분의 10%도 사용하지 않고 만들고 있다. 또 펄프 생산 공정은 리그닌을 모두 파괴하거나 변성시켜 나무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리그닌의 효용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나무의 모든 성분을 최대한 활용하여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자원을 생산하는 바이오 리파이너리(Bio-refinery)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나무로부터 원하는 성분을 얻기 위해 다른 성분을 희생시키는 기술이 아닌, 나무가 주는 모든 성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이 탄소 중립의 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염치없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한 번 더 기댈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나무가 주는 것을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더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배를 만들던 방식이 아니라, 이전에는 버려지던 것들을 이용해 석유를 대체할 연료를 만들고 유용한 화학물질을 만들어낼 방법을 찾고 있다. 지구와 인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선물은 받지만, 한여름 뙤약볕을 막아주는 그늘과, 홍수에도 흙과 빗물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탄소 중립은 일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그 답을 찾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특히 나무가 주는 다양한 성분들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연구는 오랜 세월 인간을 지켜봐 온 나무가 주는 지속 가능한 삶의 비법이자, 인간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오늘도 나는 현재를 사는 우리와 다음, 또 그다음 세대를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한 그루의 나무를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