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대전 대덕연구단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빙해 수조’에 들어서자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가로 42m 세로 32m 직사각형 넓은 수조를 품고 있는 거대한 냉동고 같은 공간이었다. 섭씨 1도를 유지하고 있는 수조 결빙 구역에 하얗게 얼어붙은 얼음 옆으로 나룻배처럼 생긴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국내 유일 쇄빙선 ‘아라온호’의 20분의 1 크기 축소 모형으로 모든 시험의 기준이 되는 표준 선박 역할을 한다. 장진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책임기술원은 “국내 유일의 빙해 수조로 전 세계에서 한국을 포함해 독일과 러시아 등 7국에서만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얼음을 ‘눌러 깨는’ 쇄빙선
빙해 수조는 극지를 오가는 선박의 모양과 속도, 무게 등에 따른 쇄빙 성능을 시험·평가하는 곳이다. 이날은 ‘쇄빙 성능 평가 시험’을 진행했다. 표준 선박이 두께 54㎜의 얼음을 다양한 속도로 쇄빙하는 성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아라온호가 두께 1m 빙하를 깨며 1~5노트로 움직이는 상황을 가정했다.
시험이 시작되자 예인 전차에 연결된 표준 선박이 조금씩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천천히 얼음을 깨고 전진했다. 선박은 1분 30초 만에 수조 끝에 다다랐다. 연구원들은 쇄빙선이 얼음에 남긴 균열에 노란색 직각 각도기를 대고 사진을 찍었다. 얼음에 생긴 균열의 모양과 깨진 얼음 덩어리 크기로 쇄빙 성능 등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책임기술원은 “깨진 얼음 덩어리가 크면 쇄빙선이 지나가면서 얼음이 선체나 추진기에 부딪혀 고장을 유발하거나 뒤따라오던 선박의 진행을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
쇄빙선은 선수(뱃머리)를 해빙 위로 올려 배의 무게로 깨뜨리는 원리로 나아간다. 실제 아라온호 선수는 해빙을 깨기 위해 일반 선박보다 두꺼운 강판과 프레임으로 보강돼 있다. 해빙에 갇힐 때를 대비해 배 안에 물탱크를 두 개 둬서 물을 양 옆으로 이동시켜 선체를 흔들며 빠져나올 수도 있다. 장 책임기술원은 이러한 쇄빙 원리 때문에 쇄빙선의 선수가 ‘바깥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가 넓을수록 쇄빙 성능은 좋아지지만 일반 해역에서 운항 속도는 떨어진다.
시험은 총 다섯 번에 걸쳐 속도를 바꿔가며 쇄빙선의 성능을 측정했다. 한 번 시험이 끝나면 깨진 얼음이 움직이지 않도록 스테이플러처럼 노란색 말뚝을 박았다. 시험이 끝난 뒤에는 얼음 두께와 강도를 다시 측정해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변한 얼음의 데이터를 보정한다. 시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는 아라온호가 실제 항해를 통해 얻은 데이터와 비교하면서 빙해 수조 시험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빙해 수조 얼음의 비밀
장 책임기술원은 “빙해 수조 얼음은 ‘덜 얼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극지 얼음이 일반 청수 얼음 밀도의 90% 수준이어서 정확한 쇄빙선 성능 시험을 위해서는 최대한 극지 환경과 비슷한 얼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음을 얼릴 때는 수조에 부동액 성분의 화학 첨가물을 넣은 뒤 수조 바닥에서 미세 기포를 뿜으며 밀도를 낮춘다. 얼음이 형성되면 15~20도까지 내렸던 수조 온도를 다시 올리면서 서서히 얼음을 녹인다. KRISO 관계자는 “원하는 강도와 두께의 얼음을 만들기 위해 보통 시험 5일 전부터 연구원들이 밤낮으로 얼음을 살펴본다”고 했다.
빙해 수조로 얻은 데이터는 아라온호를 이을 차세대 쇄빙선 개발의 기반이 된다. 2026년까지 2774억원을 투입해 아라온호보다 두 배 이상 큰 1만5450톤급 차세대 쇄빙선을 개발할 예정으로 현재 기본 설계를 마친 뒤 선박을 건조할 조선소를 선정하고 있다. 장 책임기술원은 “한국이 빙해를 끼고 있는 빙권 국가는 아니지만 빙해 수조를 통해 북극 항로 개척과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초를 다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