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남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인류 최초의 배터리로 추정되는 물건이 발견됐다. 약 2500년 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그다드 배터리’는 구리판이 양극, 철봉이 음극 역할을 하고 와인이나 식초를 전해액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상용 리튬 이온 전지는 1991년 일본 소니가 출시했다. 다른 방식의 이차전지와 비교해 가볍고, 에너지 저장량이 많고, 수명이 길어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2019년 노벨 화학상은 리튬 이온 전지 개발에 공헌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는데, 노벨위원회는 이들이 ‘충전 가능한 세상’(Rechargeable World)을 열었다며 그 공로를 치하했다. 이들의 연구가 없었다면 모바일이라는 개념은 벽돌보다 큰 배터리를 들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배터리 관련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로 리튬 이온 전지는 발전을 거듭해왔고, 특히 전기자동차 산업의 성장은 기폭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탄소 중립이 전 지구적 이슈가 되면서 각국은 친환경 자동차의 보급을 권장하는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로 인해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의 치열함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현재로서는 리튬의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안정적 확보가 최선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리튬 이온 전지가 모든 사용처에서 최선의 선택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차전지가 개발되면 그에 적합한 시장을 창출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다양한 쓰임새에 따른 맞춤형 이차전지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중국의 한 기업이 소금의 주요 원소인 나트륨(Na)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이차전지를 상용화하겠다고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트륨은 바닷물 속에 풍부하게 있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나트륨 이온 전지는 안정성이 높고, 가격이 저렴해 대형 배터리가 필요한 ESS와 같은 대규모 전력 저장장치용 배터리로 사용될 수 있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의 기술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리튬 이온 전지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차세대 배터리 기술임은 분명하다.

정경윤 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장

차세대 이차전지라고 하면 현재의 리튬 이온 전지를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새로운 이차전지를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차세대 이차전지는 새로운 사용 분야, 혹은 시장을 만들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이차전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과거 널리 사용되었던 납축전지를 리튬 이온 전지가 모두 대체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이유이다. 각각의 이차전지는 자신의 특성이 최적화된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다. 현재 시장의 대세인 리튬 이온 전지와 더불어 다양한 차세대 이차전지 기술을 보유하는 멀티 배터리 시스템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에너지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한 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