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역경은 사람을 단단하게 해줄까. 과학자들의 답은 ‘아니다’였다.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에서는 어릴 때 너무 많은 고난을 겪으면 수명이 더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2016년 개코원숭이 연구 프로젝트에 따르면 암컷 개코원숭이가 어릴 때 어미를 일찍 잃거나 장기간 가뭄을 경험하면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수명이 10년 가까이 짧아졌다. 사람 역시 폭력, 가족 상실 같은 상처를 어릴 때 입으면 상대적으로 수명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서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이나 약물 남용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릴라는 달랐다. 다이앤 포시 고릴라 펀드(DFGF)는 15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커런트바이올로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55년간의 마운틴 고릴라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고릴라는 어린 시절 부정적 경험을 겪어도 수명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르완다 국립공원에 서식한 마운틴 고릴라 253마리를 추적 분석했다. 그 결과 어린 마운틴 고릴라의 삶이 아무리 험난했더라도 다른 고릴라만큼 오래 살았고, 심지어 많은 역경을 겪은 고릴라는 장수하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티투스라는 고릴라는 네 살에 아버지와 형제들이 밀렵꾼에게 살해당했고, 어머니와 누나는 도망쳤다. 하지만 티투스는 이 공원에서 역대 어떤 고릴라보다 많은 새끼를 거느렸고 35세까지 살았다.
연구팀은 마운틴 고릴라를 둘러싼 환경에서 이유를 찾았다. 수컷 한 마리가 지배하는 다른 영장류 집단과 달리 마운틴 고릴라는 여러 수컷이 조화를 이루면서 산다. 주도권 다툼이라는 스트레스 요인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정부가 관리하는 고지대 서식지에서 풍부한 먹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먹이 경쟁도 하지 않는다. 연구를 주도한 미 미시간대 스테이시 로젠바움은 “심각한 정서적 상처를 받은 고릴라도 이런 안정적인 요인들에 둘러싸여 성장하면 회복이 가능한 것 같다”면서 “역경이 스트레스와 호르몬, 질병 등에 미치는 후속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