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컨테이너에 갇힌 원숭이가 멀리 떨어진 로봇 팔을 움직여 먹이를 자신의 입 앞으로 가져온다. 원숭이가 직접 몸을 움직여 로봇을 조종한 게 아니다. 오로지 뇌 신호로 로봇을 조작한 것이다. 중국 난카이대 인공지능학부 연구팀은 원숭이의 뇌 신호를 로봇에게 전달하기 위해 목 부위 경정맥에 센서를 삽입했다. 원숭이가 먹이를 잡고 있는 로봇 팔을 움직이고 싶으면 생각대로 로봇 팔이 동작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 사물을 움직이는 기술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멈추지 않고 현실화되고 있다. 바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통해서다. 뇌에서 나오는 미세한 신호를 포착해 로봇 등 다른 사물에 전달하는 원리다. BCI 기술 개발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최근 인공지능(AI) 발전과 함께 뇌파 측정 센서가 소형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의료뿐 아니라 게임과 군수 등 다양한 영역에서 BCI 기술이 활용되면서 시장 규모도 2022년 2조8200억원에서 2032년 12조5000억원으로 매년 16.7%씩 급성장할 전망이다.
◇마비 환자 움직이는 BCI
BCI 기술은 특히 의료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연구팀이 개발한 BCI는 뇌와 척수 사이의 생체 신호를 무선으로 전달해 하반신 마비 환자가 걸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뇌와 척수에 각각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센서를 삽입했다. 환자가 오른발을 내딛는 생각을 하면 뇌가 특정 신호를 발산하고, 이 신호를 300ms(밀리미터초) 만에 척수가 받아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40대 남성에게 해당 장치를 이식한 뒤 경과를 관찰했다. 일정 기간 적응 훈련을 마친 남성은 스스로 걸음을 옮기고 계단을 오르는 등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1년 후에는 장치를 끈 상태에서도 목발을 짚고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호전됐다. 재활 덕분에 신경이 회복된 것이다.
BCI 스타트업 중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뉴럴링크다. 뉴럴링크는 소형 칩을 환자 좌뇌와 우뇌에 직접 이식하는 임상 시험에 대해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칩에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작은 전극이 1024개 연결돼 있어 뇌의 신호를 읽어 각종 기기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한다. 뉴럴링크의 단기 목표는 BCI 기술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시력을 회복하고 사지 마비 환자의 근육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지난 2021년 원숭이의 뇌에 칩을 2개 이식해 생각만으로도 간단한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간단한 시술로 뇌파 측정
BCI는 외과 수술을 통해 뇌에 직접 센서를 넣는 ‘삽입형’과 두피에 센서를 연결하는 ‘부착형’으로 나뉜다. ‘삽입형’은 뇌 신호를 강하게 주고받을 수 있지만 수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대로 수술을 하지 않는 ‘부착형’은 환자의 불편함을 덜 수 있지만 뇌 신호를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간단한 시술로 뇌에 센서를 넣는 하이브리드형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미 BCI 스타트업 싱크론이 개발한 BCI는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수술처럼 뇌파 센서를 혈관에 넣어 대뇌 운동피질의 신호를 수신한다. 지난 2021년 FDA 임상 시험 승인을 받은 싱크론은 루게릭병으로 손을 움직이기 힘든 환자를 통해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해당 환자가 이식받은 BCI를 통해 자판을 치는 생각을 하면 센서가 신호를 인식해 태블릿에 글자를 썼고, SNS에 직접 글을 남길 수 있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뇌의 전기 신호를 통해 컴퓨터 등 외부 장치를 제어하는 기술로 뇌 특정 부위에 뇌파를 읽을 수 있는 컴퓨터 칩을 심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