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선수의 옛 동료이자 친구인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2021년 유로 2020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현재 그는 심장 제세동기를 몸에 이식한 후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심장 제세동기는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거나 부정맥 전조 증상이 있을 때 전기 충격을 가해 맥박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역할을 한다. 심장 이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도 이식형 전자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세계 최고 축구 리그의 선수로 다시 뛸 수 있는 세상이다.
생체 이식형 전자 의료기기 산업은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로 인한 기업의 이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메드트로닉이라는 심장 제세동기 생산 기업은 연 매출이 300억 달러인데, 순수익이 50억 달러에 이른다. 반도체 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기업이 나올 법한데,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가 없는 것은 재료, 디바이스, 생물실험으로 이어지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매우 긴 시간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투자를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삽입형 전자 의료기기는 실리콘 반도체 기반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부피가 크고 딱딱하다. 실제 제세동기를 삽입한 환자들의 어깨에는 제세동기가 혹처럼 볼록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부피가 큰 의료기기를 체내에 삽입함으로 인해 느끼는 위화감은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 환자들이 삽입형 전자의료기기를 선택하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심장질환뿐만 아니라 당뇨병을 앓는 환자도 생체 이식형 전자 의료기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당뇨병 환자는 혈중 당 농도 관리를 위해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다섯 번 정도 바늘로 피를 뽑아야 한다. 가장 얇은 피부 부위 중 하나인 손끝에서 피를 뽑는데, 손끝은 통각세포가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어 고통이 극심하다. 일제 강점기 일본 형사들의 고문 방식 가운데 손톱 밑을 대나무 바늘로 찌르는 게 있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한 번의 고통으로 오랜 시간 혈당 측정이 가능한 이식형 포도당 센서를 의사가 권유한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할 만하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한 회사가 2주간 지속적으로 혈당 측정이 가능한 삽입형 포도당 센서를 개발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높은 가격 외에도 5g 이상의 무게와 피부 부착에 필요한 강력 접착제, 그리고 5㎜ 두께의 바늘 사용으로 인한 알레르기 및 염증 반응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KIST가 개발하고 있는 박막형 생체 이식 전자 의료기기는 앞서 언급한 삽입형 전자 의료기기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미래형 의료기기다. 기존의 실리콘 기반 전자소자에서 벗어나 필름 형태의 박막형 기판에 생체신호 측정에 필요한 전자회로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는 당뇨병 환자들이 반복되는 고통을 겪지 않고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체내 이식형 포도당 센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께는 머리카락의 절반 수준인 5마이크로미터(㎛) 미만, 무게는 깃털 하나보다 가벼운 4㎎의 센서 개발에 성공했다. 앞으로 포도당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의 위험 인자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의료기기로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센서가 측정한 신호를 무선으로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집적화한 회로가 필요한데, 이로 인해 센서는 두껍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칩을 사용하지 않고 무선 정보 송신까지 가능한 플랫폼 개발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연구자로서 오랜 기간 박막형 생체이식 전자 의료기기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는 환자가 몸속에 디바이스를 이식한 후에도 이를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이 없는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싶어서다. 얇고 가벼운 박막의 의료기기는 기능적으로도 몸 안에서 이물질에 대한 면역 반응을 최소화해 줄 수 있다. 다양한 질병의 징후를 한꺼번에 측정할 수 있는 삽입형 생체센서는 우리 몸의 이상반응을 즉시 알려줘서 대부분의 질병을 초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의료시스템을 구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