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11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병원 진단 검사 결과를 정리하는 시스템’을 특허 등록했다. 보건복지부에서 연구비 2억원을 지원받은 사업의 결과물 중 하나다. 하지만 대한변리사회 분석 결과 이 특허는 사실상 상용화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리사회는 “검사 결과 데이터를 단순 처리할 뿐 가공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며 “대체할 수 있는 기술도 이미 많다”고 했다.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특허 등록한 ‘우울증 치료를 위한 인공지능 기반 상담 기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1억5307만원 예산을 받았다. 하지만 이 특허 역시 상용화가 어렵다. 변리사회는 “기술 구현은 가능하지만 시장성이 없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국내 대학들이 첨단 분야에서 등록한 특허 대부분이 사업화가 불가능한 ‘깡통 특허’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과제당 수억원씩 예산을 지원했지만, 대학들이 상용화보다는 특허 등록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이다. 19일 본지와 대한변리사회가 반도체·인공지능(AI)·혁신신약·헬스케어 분야 특허 상위 10개 대학이 지난해 하반기 등록한 특허를 전수조사한 결과 10개 중 7개가 ‘특허를 위한 특허’였다. 상용화가 가능한 최우수 특허는 4%에 불과했다. 서울대, KAIST, 포스텍,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국내 상위권 대학이 모두 비슷했다. 반도체(296건), 인공지능(282건), 혁신신약(298건), 헬스케어(220건) 등 총 989건(중복 포함)이 분석 대상이었다.

◇미래 분야에 깡통 특허만 수두룩

변리사회는 자체 평가를 통해 특허를 1~10등급으로 나눴다. 3등급은 우수한 특허, 4등급은 경우에 따라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변리사회 관계자는 “5등급 이하는 특허는 등록받을 수는 있지만 사업화가 어려운 수준”이라고 했다. 전체 분석 특허 중 5등급 이하가 71.1%였다. 국내 대학이 등록한 특허 가운데 1~2등급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허는 독점적인 권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우수한 특허를 많이 보유한 국가와 기업이 미래 시장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챗GPT의 등장으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AI의 경우 국내 대학들이 등록한 특허는 대부분 쓸모가 없었다. 3등급은 2.1%에 불과했고, 5등급 이하가 78.7%에 육박했다. 하나의 정부 사업에서 무더기로 깡통 특허가 양산되는 경우도 있었다. 교육부에서 1억1940만원을 지원받은 AI 사업에는 131개의 특허가 출원됐지만 4등급 이상이 단 한 건도 없었다.

헬스케어·혁신신약 분야 역시 우수한 특허를 찾기 어려웠다. 7등급을 받은 서울대의 영양성분을 증가시킨 무순 추출물에 관련한 특허는 무효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제조법 자체가 너무 단순해 차별성이 없다는 평가였다. 가천대의 아바타를 이용한 헬스케어 특허 역시 부실 특허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과제보다 기업 공동 연구가 점수 높아

기업이 공동으로 연구에 참여한 경우 특허의 질이 나아졌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삼성전자와 공동 연구한 ‘응시 거리를 결정하는 방법 및 디바이스’ 특허는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업이 주도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대학보다 인력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2021년 한국의 총 연구·개발(R&D) 비용은 102조1352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용 비율은 세계 2위이다. 이 중에서 대학은 9.1%인 9조3306억원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학의 기술 이전율은 30%대에 불과하다. 대학의 특허가 사업화나 창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다. 한 대학교수는 “특허 숫자를 정부 과제의 평가 지표로 사용하다 보니 과제비를 따기 위해 쓸모없는 특허들이 무더기로 양산되는 것”이라고 했다. 홍장원 변리사회 회장은 “한국 대학 특허는 완성도가 부족하거나 특허에 대한 투자가 적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평가 기준을 양에서 질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