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야당은 전날 나온 국제원자력기구(IAEA) 최종 보고서에 대해 ‘깡통 보고서’ ‘일본 맞춤형 보고서’라며 날을 세웠다. 이날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간담회’에 참석한 해외 한인 과학기술 석학들은 “수십 년 연구해온 권위자들을 신뢰하고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라며 “현재 한국의 상황은 과학자 입장에서 참담할 정도”라고 했다. 또 광우병, 사드, 천안함 등 괴담이 과학적인 증거를 무력화한 사례를 거론하며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가 소모적인 논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영기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 유정하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책임연구원, 김준범 프랑스 트루아공대 교수, 유정일 전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선임 담당관이 참석했다.
◇”과학적 사실 믿지 않으면 모두가 손해”
과학적인 자료를 토대로 한 사실을 믿지 않아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사회적 비용을 희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정하 책임연구원은 “과학적, 합리적 근거 없이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진실이 밝혀져도 틀린 주장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지만 그동안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과 국민적 불안은 누가 책임지나”라며 “과학적인 신뢰성을 논하는 공론화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시민 불안이 증폭되는 것”이라고 했다. 유정일 전 담당관은 “처리를 거쳐 방류된 오염수가 우리나라 해역 어패류에 영향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논리라면 오염수가 먼저 도달하는 태평양 원양어업은 다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참석자들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도 연구 결과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기는 하지만 과학적 근거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준범 교수는 “현재 파리에서 벌어지는 시위에서 보듯 프랑스도 국민들이 격렬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나라지만, 과학자들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일은 없다”며 “과학적인 팩트를 기반으로 ‘이런 측면을 더 살펴보자’ ‘이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했다. 조남준 석좌교수는 “과학은 숫자와 팩트의 싸움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한국 상황은) 그렇지 않다”면서 “국제기구의 과학적 데이터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상황을 보니 당혹스럽다”고 했다. 유 책임연구원은 “과학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견이 분열 해소보다는 진영 논리 강화에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유행 당시 독일에서는 세계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코로나를 퍼트렸다는 음모론이 퍼지며 ‘반마스크 운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전문가들과 함께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설득에 나서자 여론이 돌아섰다. 유 책임연구원은 “독일에서 음모론이 정쟁으로 확대되는 양상은 보지 못했다”면서 “양 극단의 성향을 가진 사람보다는 중간층을 대상으로 과학적 팩트 전달에 치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에게 홍보하고 설득하는 과정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보다 주체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유 책임연구원은 “정부는 국정 담당의 주체며 1차 책임자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왜 못 믿냐’는 식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며 “결과가 옳다는 것만 주장하는 방식은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정일 전 담당관은 “대토론회를 제안한다”며 “정부나 연구소, 시민단체, 어민단체 모두 공론의 장에 나와 이야기해 보라”고 말했다. 김준범 교수는 “프랑스의 경우는 논쟁적인 사안이 생기면 토론부터 하는데 한국은 그런 여유가 없어 보인다”며 “국민에게 홍보하고 설득하는 단계가 너무 짧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과학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무조건 옳다고 주장만 하면서 대중의 눈높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영기 석좌교수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과학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과학기술인들이 대중을 잘 이해시키는 것도 과제”라고 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 장관)은 “국민의 불신이 높고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과학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