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 시각) 미 식품의약국(FDA)이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를 처음으로 정식 승인하면서 난치병인 알츠하이머 극복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방과 증상 완화에 머물렀던 알츠하이머 치료의 목표가 레켐비의 등장으로 증상을 멈추거나 개선하는 ‘근원적 치료’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알츠하이머 센터장인 케이스 보셀은 워싱턴포스트에 “레켐비는 분명한 과학적 돌파구”라고 했다. 다만 아직 경미한 환자에게만 적용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고, 심각한 부작용과 연간 3500만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력과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고령화로 전 세계 알츠하이머 환자는 2020년 5500만명에서 2030년 7800만명, 2050년 1억3900만명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과학자와 제약사들이 치료제 개발에 나섰지만 일부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에 그쳤고, 효과도 짧았다. 무엇보다 알츠하이머의 발병 원인 자체가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다. 환자의 뇌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치료제 개발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김영수 연세대 약대 교수는 “레켐비의 효능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알츠하이머 치료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알츠하이머 진행 27% 늦춰
FDA 승인을 받은 레켐비는 임상시험에서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으로 확인된 최초의 치료제다. 알츠하이머 환자 뇌의 아밀로이드 단백질에 항체가 결합해 제거하는 원리다. 앞서 2021년 두 회사는 비슷한 원리로 치료제 ‘아두헬름’에 대해 FDA의 조건부 승인을 받았지만 낮은 효능과 부작용 논란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레켐비는 올해 1월 긴급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부 승인을 받은 뒤 임상시험 3상 결과를 바탕으로 정식 허가를 받았다.
레켐비는 2주에 한 번씩 정맥 주사를 통해 약물을 주입한다. 1795명을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시험에서 치료제를 투여받은 환자는 18개월 후 위약(효과 비교를 위한 가짜약) 투여 환자보다 인지 능력 감소가 27% 늦게 진행됐다. FDA는 “18개월간 5개월 정도 병의 진행을 늦춘 것과 같은 결과”라고 했다. 앞서 진행된 임상 2상에서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감소하는 것이 확인됐다.
레켐비의 출시에도 불구하고 알츠하이머 정복까지는 갈 길이 멀다. 엄밀히 말하면 레켐비는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단계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 능력과 기억력 저하 속도를 늦추는 수준이다. 뉴욕타임스는 “재정적, 의학적 측면에서 평가해야 할 요소가 많은 치료제”라고 했다. 인지 저하와 기억력 감퇴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중증 환자에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라고 부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각한 부작용 위험
부작용도 심하다. FDA는 “레켐비는 심각하게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며 가장 높은 수준인 ‘블랙 박스 경고’를 라벨에 부착하도록 했다. 레켐비를 투여받은 환자의 13%는 뇌 부종을 경험했지만, 위약 그룹에서는 2% 미만에 불과했다. 또한 레켐비 투여 환자의 약 17%에게서 뇌출혈이 있었다. 위약 그룹에서는 절반 수준인 9%였다. 특히 알츠하이머 환자의 약 15%에 해당하는 ‘APOE4′ 돌연변이 환자와 혈액 희석제 복용 환자도 부작용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알츠하이머 치료제도 곧 출시될 전망이다. 미국 일라이릴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나네맙’의 FDA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5월 도나네맙의 임상 3상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기억 능력 저하를 35%가량 늦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레켐비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우수한 수준이다. 미국 네바다대는 “올해 전 세계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물질은 141개로 187건이 임상 중”이라고 했다. 고성규 경희대 교수는 “우수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면 환자와 가족을 고통에서 구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제약 업계의 판도까지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