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여성 최초 스탠퍼드대 의대·공대 종신 교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 뇌 과학 분야 석학.
이진형(46) 스탠퍼드대 교수에게 뒤따르는 수식어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어려운 일을 40대 젊은 나이에 이뤄냈다. 하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제1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이 교수는 지난 6일 인터뷰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는 항상 반대가 끊이지 않았다”며 “그것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내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파이어니어(개척자)’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변 반대 뚫고 온 파이어니어
이 교수는 열 살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성공해 편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학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요새 많은 학생이 선망하는 직업인 의사가 안 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며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이 시대에 과학자를 하는 것은 참 행운”이라고 했다.
그는 10대 때부터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 과학고에 진학한다고 하자 “과학만 공부하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며 선생님들이 반대했다. 그래도 과학을 공부하겠단 마음으로 서울과학고에 진학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입학 면접에서는 교수가 “전기과에 여학생이 뭐 하러 오느냐”라고 물었다. 그럼에도 매력을 느꼈던 전기과에 입학했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까지 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유학 당시 공부는 참 재미있었지만 목표 의식이 불분명해 연구에 대한 흥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사를 졸업할 때쯤 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뇌 질환 치료를 왜 저렇게밖에 못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며 “풀고 싶은 문제가 생기니 목표가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뇌과학 연구에 뛰어들게 됐다.
전기공학을 공부하다 갑자기 진로를 바꾸겠다고 하니 또다시 반대에 부딪혔다. 지도교수와 주변 지인들 모두 “커리어가 망가진다” “전기공학자인데 어떻게 뇌 연구를 하겠느냐”라고 했다. 심지어 당시 미국 명문대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로 임용된 상황이었다. 고군분투 끝에 신경세포가 망처럼 연결된 뇌를 전기 회로도처럼 분석하는 연구로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과제 지원을 받게 됐고,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스탠퍼드대 종신교수로 임용됐다. 2019년에는 NIH가 주는 최고 권위상인 ‘파이어니어상’도 받았다. 이 교수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연구를 하다 보니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몇 배의 노력을 더 들여야 했다”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버텨냈다”고 말했다.
◇”내 직업은 문제 해결사”
이 교수는 뇌 질환 극복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2013년에는 뇌 질환 진단·치료 스타트업 ‘엘비스’를 창업했다. 이때도 주변에서 “교수가 무슨 사업을 하느냐”고 만류했다. 그는 “전공을 바꿨을 때보다 사업을 새로 시작할 때 더 큰 저항과 벽을 느꼈다”고 했다. 엘비스는 사람의 실제 뇌를 디지털 공간에 똑같이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뇌의 기능과 상태를 정밀하게 측정해 뇌 질환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이 교수는 “뇌전증(간질)을 진단할 수 있는 플랫폼을 올해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여성으로 미국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하나씩 깨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 끝에 그에게는 여러 직업이 생겼다. “과학자, 창업가, 교수로 불리지만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해결했을 때의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문제를 계속해서 풀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