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잘 가서 졸업장을 받는 것,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잡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통념을 깨면서도 엄청난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천재’ 또는 ‘기린아’ 등으로 부르며 찬사를 보내고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특히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면 ‘위인’이라고 불러야하겠죠.
지금부터 반세기 전 인공지능(AI)의 초창기를 밝힌 과학자이자 과학사상가 에드워드 프레드킨(Edward Fredkin)이 지난달 1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라인에서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무한한 과학적 상상력을 가진 프레드킨은 디지털 물리학의 선구자이자 비상식적인 이론의 주창자로 이름을 떨쳤다”면서 “주변 사람들은 그가 하루에 다른 사람의 한 달치를 생각했다고 평가한다”고 했습니다.
◇2학년때 칼텍 중퇴
프레드킨은 진정한 천재이자 ‘괴짜’였습니다. 그는 193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러시아 이민자 출신 부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마누엘은 대공황 동안 파산한 라디오 상점 체인 주인이었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다른 천재들이 그렇듯 프레드킨의 어린 날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고 스포츠나 사교 댄스 대신 로켓 만들기, 불꽃놀이 디자인, 오래된 알람 시계 분해 같은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나는 항상 기계와 친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뒤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에 진학했는데, 당시 동료 중에는 화학결합의 본질을 규명해 1954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라이너스 폴링이 있었습니다.(폴링은 1962년 평화적 핵 사용 운동을 이끈 공로로 노벨 평화상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프레드킨은 2학년 때 학교를 돌연 그만둡니다. 하늘과 비행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실제로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았지만, 군은 수학과 기술에 대해 놀라운 능력을 가진 프레드킨을 전장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군은 펜타곤이 자금을 지원하고 있던 기술 혁신의 원천 ‘MIT 링컨 연구소’로 발령냈습니다.
◇고졸 출신 MIT 정교수
링컨 연구소에서 그는 동시 접속(다중 액세스)이 가능한 컴퓨터의 초기 버전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그램 참여자 가운데는 마빈 민스키, 존 맥카티, 클로드 섀넌 등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뉴욕타임스는 “프레드킨을 포함한 이들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들 가운데서도 두각을 나타낸 프레드킨은 1968년 MIT 정교수가 됐고, 1971년부터 1974년까지는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를 맡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대학 2학년을 중퇴했고, 최종 학력은 고졸입니다. 오늘날과 다른 시절이라고 해도, 세계 최고 대학에 고졸 출신으로 교수가 됐다는 것은 그의 능력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압도적이었다는 뜻입니다.
프레드킨이 맡았던 다중 엑세스 컴퓨터(Man and Computer 또는 Machine Aided Cognitions) 프로젝트는 추후 MIT 컴퓨터과학 연구소가 됐고, 오늘날은 MIT 컴퓨터과학 및 인공지능 연구소(CSAIL)로 불립니다. CSAIL은 지난 수십년간 세계 최고의 AI연구소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초기 컴퓨터 개발에서 프레드킨의 이론과 실험은 획기적인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됐습니다. 토마소 토푈리와 프레드킨 게이트와 그가 함께 개발한 ‘당구공 컴퓨터 모델’은 “이론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거나 열이 발생하지 않는 컴퓨터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수많은 과학자가 양자 컴퓨터 개발에 뛰어드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주창한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아인슈타인 이후 20세기 최고의 천재’로 불렸던 리처드 파인만도 있었습니다. 파인만과 프레드킨은 한때 칼텍에서 함께 일했습니다.
◇황당할 정도로 정확한 예측
프레드킨은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에 대한 오늘날의 화두를 예견했습니다. 그는 1977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초지능 개발에는 공학과 과학의 조합이 필요하며, 우리는 이미 공학은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보다 더 잘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인간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새의 깃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AI는 사람의 뇌가 작동하는 아주 간단한 원리만을 모방해서 만들어집니다. 사람의 뇌에 대해 10% 정도만 알고 있지만, 흉내는 낼 수 있다는 것이죠.
AI의 초창기에 그는 AI의 미래를 이렇게 예견했습니다. “최초의 AI는 인간처럼 어떤 것에는 똑똑하고 다른 것에는 멍청할 것이다. 먼 미래에 우리는 컴퓨터가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두 AI가 대화를 나눈다면, 그들은 지구 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평생 말한 모든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할 것이다.” 이 인터뷰가 거의 50년 전에 이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황당할 정도로 정확한 예측입니다. 특정 분야에서 정해진 일만 잘하는 AI의 출현,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블랙박스로 불리는 딥러닝(심층학습) 기술, 수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학습하고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예측할 수 있는 AI의 등장까지 모두 내다본 겁니다.
◇”우주는 정보로 환원된다”
프레드킨은 체스를 두는 AI를 처음으로 개발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80년 세계 체스 챔피언십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기고 우승하는 AI를 만드는 사람에게 10만 달러를 주겠다며 ‘프레드킨상’을 만들었습니다. 17년이 지난 1997년 IBM의 수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기면서 이 상금을 가져갔습니다. 당시 프레드킨은 “컴퓨터가 결국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길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언제 실현될지가 문제였다”고 했습니다.
프레드킨은 논쟁적 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80년대 “정보는 물질과 에너지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른바 ‘디지털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창안했습니다. 프레드킨은 원자, 전자, 쿼크 같은 물질들이 디지털의 단위인 비트로 환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인 유전자(DNA)를 디지털 정보로 인코딩할 수 있는 것처럼 세상 모든 물질을 인코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로 여겼던 그의 우주 이론은 화제를 모으기는 했지만, 주류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MIT 전자공학과 교수이자 프레드킨의 동료였던 제럴드 서스먼은 “그가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었는지 확실치 않다”면서 “하지만 그의 방식대로 생각하면서 배울 것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5~500년 사이에 AI가 인간 뛰어넘는다”
프레드킨은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발명가이자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1962년에는 프로그램 가능한 필름 판독기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판독기는 레이더 정보와 같이 카메라가 캡처한 데이터를 컴퓨터가 분석할 수 있도록 한 장치였습니다. 프레드킨은 이 회사 ‘인포메이션 인터내셔널 인코퍼레이티드(Information International Incorporated)’를 1968년 증시에 상장했고, 막대한 금액을 벌어들였습니다. 이 돈으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카리브 해의 섬을 사서 자신의 ‘세스나 206′ 수상 비행기에 타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는 식수가 부족한 섬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해수를 담수화하는 역삼투 기술까지 개발했습니다. 프레드킨의 별장이었던 ‘모스키토 섬’은 나중에 버진그룹 창업자인 리처드 브랜슨(네. 우주기업 버진 갤럭틱 창업자 맞습니다)이 2500만 달러에 매입했습니다.
프레드킨은 MIT 미디어랩과 카네기멜런대에서 수십년간 일하며 수많은 업적을 쌓았고, AI의 선구자들을 배출했습니다. 그는 우주 역사 138억년의 3대 사건으로 ‘우주 탄생, 생명 탄생, AI 출현’을 꼽았습니다. AI의 여명기에 그와 동료는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시대가 5년에서 500년 사이에 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시대 한가운데에 살고 있습니다.
※참조
뉴욕타임스
https://www.nytimes.com/2023/07/04/science/edward-fredkin-dead.html
보스턴닷컴
MIT 테크놀로지리뷰
https://www.technologyreview.com/2021/04/27/1021714/tomorrows-computer-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