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범고래의 등지느러미에 난 상처(왼쪽)와 이를 확대한 사진(오른쪽). /커런트 바이올로지

사람처럼 동물들에게서도 지극한 모성애(母性愛)가 관찰된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죽음도 불사한다. 범고래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많은 어미 범고래가 최대 5톤(t)에 달하는 다 큰 자식을 보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엑서터대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폐경을 한 어미 범고래와 함께 있는 수컷 범고래는 다른 범고래들보다 흉터가 적었다”고 밝혔다.

폐경은 동물에게 드문 일이다. 자연에서 번식하지 않는 것은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포유류 가운데 인간과 이빨고래 등 단 6종만 폐경을 경험한다. 수명이 최대 90년인 범고래의 경우 폐경 후 약 20년을 더 산다. 과학자들은 범고래가 폐경 후 번식하지 않고 더 사는 이유를 찾으려 했다. 앞선 연구들에서는 범고래가 폐경 후에도 자식들의 먹이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태평양 연안에 사는 범고래 103마리를 50년 이상 추적해 찍은 6934장의 사진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범고래 몸에 난 상처를 확인했다. 범고래는 자연에서 인간 외에는 천적이 없기 때문에 범고래에게 난 상처는 다른 범고래에 의해 생긴 상처다. 분석 결과 폐경을 한 어미와 함께 있는 수컷은 어미가 없거나 아직 새끼를 낳고 있는 어미를 둔 다른 범고래보다 흉터가 35%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미 범고래가 자식의 싸움을 말린 덕분이다. 다만 암컷 자식에게는 어미의 보호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수컷은 여러 암컷과 번식할 수 있어 어미의 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사람만큼이나 유별난 범고래의 아들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