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다이아몬드 사이에 작은 시료를 끼워 넣고 다이아몬드를 통해 레이저를 발사한다. 얼룩만큼 작은 크기의 시료는 순식간에 일상적인 압력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고압에 노출된다. 태양만큼 뜨거운 환경에 놓일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땅속의 극한 환경을 재현할 때 사용하는 ‘고압 연구’ 방식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2층 높이의 거대한 고압 연구 장치인 ‘이히반’ 등의 장비를 개발하는 데 1370만달러(약 182억6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히반은 6000t 이상의 무게로 짓누르는 압력을 가할 수 있어 지금까지는 아주 작은 시료 분석에 그쳤던 고압 연구의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직접 들어가볼 수 없는 지구 안쪽에 대해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우주의 비밀’ 풀려면 지구 속을 먼저 들여다보라… 우주 선진국도 지구 연구 뛰어들어

과학계의 눈이 우주로 쏠려있는 지금, 지구 내부를 들여다보는 연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히반을 구축 중인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행성학자 조셉 오로우크는 워싱턴 포스트에 “(지구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어서 인간은 아직도 아주 기본적인 질문만 하고 있다”며 “지구 내부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다른 행성에 대한 가설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지구 심부 탐사가 우주 탐사보다 어려워”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지구 내부의 모습은 지질학자들이 지진파와 운석·화산 폭발 등으로 인해 드러난 정보를 분석한 결과다. 지질학자들은 마치 의사가 초음파 사진을 읽는 것처럼 지구의 구조를 해독해냈다. 교과서 속 그림은 지구가 지각과 맨틀, 외핵과 내핵으로 깔끔하게 나눠져 있는 것으로 그리지만 최근 정보에 따르면 지구 내부는 지층이 불규칙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복잡한 모양이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 초에는 베이징 대학교 지구우주과학과 연구진이 액체로 추정되는 지구 외핵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지에 게재해 이 변화가 지구에 미칠 영향을 두고 학계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깊은 인공 구멍은 러시아 북부 무르만스크주에 위치한 콜라 반도의 ‘콜라 시추공(Kola Borehole)’이다. 냉전 시기 미국과 우주 탐사 경쟁을 펼치던 소련이 지구 연구에서 앞서가기 위해 만든 것이다. 1970년 굴착을 시작해 1989년 1만2262m에 도달한 후 공사가 중단된 후 현재까지 세상에서 가장 깊은 구멍으로 남아있다.

이후에도 광물이나 석유를 얻기 위해 깊이 파들어간 시추공들이 있긴 했지만 모두 1만2000m 수준을 넘지 못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급격히 오르는 온도와 압력 때문이다. 콜라 시추공이 공사 중단 단계에 달했을 때 드릴에 가해진 압력은 대기압의 1000배를 넘어섰고 온도는 섭씨 180도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지진학자 베드런 래키스는 과학잡지 디스커버에 “우리는 다른 행성을 탐험하려고 하지만 사실 지구 내부를 파고들어 무엇이 있는지 규명하는 작업이 기술적으로 우주에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中, 지구 내부 들여다볼 11km 깊이 구멍 착공

해외에선 지구 내부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이히반을 포함해 고압 비틀림 저항 측정 장치, 고압 가스 장치 등 지구 내부의 환경을 연구하기 위한 대규모 장비를 갖추는 ‘열린 연구를 위한 압축 환경 연구 시설(FORCE: Facility for Open Research in a Compressed Environment)’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중국은 올해 깊이 1만1100m를 목표로 시추공을 똟기 시작했다. 북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타림 분지에서 지난 6월 시추를 시작한 이 시추공은 완공에 457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탐사는 지구 표면 아래의 깊은 곳을 연구할 수 있는 전례없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약 1억4500만년 전 백악기 지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암석의 특징을 연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지역은 광물이 풍부하고 석유 자원 매립지로 유명해 중국 정부가 자원을 목표로 개발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