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인도 무인(無人) 우주선 찬드라얀 3호가 세계 최초로 달의 남극에 착륙하자 현지 매체들은 “우마차에서 시작한 인도 우주 산업이 마침내 달까지 갔다”고 보도했다. 1990년대 초까지 예산·인력이 부족해 전용 운반 차량 대신 우마차로 통신위성을 옮겼는데, 30여 년 만에 미국·러시아·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주 강국이 됐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달 남극은 물과 희귀 자원 확보를 위해 세계 각국이 도전장을 내민 우주 탐사 요충지다. 달 남극에 물이 든 얼음 덩어리가 존재하는 걸 처음 확인한 나라도 인도(2009년 찬드라얀 1호)였다.
우주 변방에 가까웠던 인도가 어떻게 전 세계 우주 산업을 이끄는 ‘퀀텀 점프(비약적 도약)’에 성공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넓은 첨단 공학 엔지니어 저변과 과감한 여성 인력 등용,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 가성비 전략 등을 비결로 꼽는다.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은 “인도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위성을 만들었을 정도로 탄탄한 저력이 있다”면서 “향후 화성 개척 등 심(深)우주 개발을 위한 중요한 관문이자 베이스캠프인 달의 남극에 인도가 미국, 일본보다 먼저 깃발을 꽂았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우주 산업은 큰 인기가 없었다. 젊은 이공계 인재들은 경제적 성공을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갔다. 미국·러시아가 초대형 로켓을 쏘아 올리고, 국제우주정거장을 만드는 동안 인도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는 우주 탐사 대신 소형 위성을 대신 발사해주는 대행 사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인도 경제가 급성장하자 우주 산업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에는 무인 탐사선을 화성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탐사선은 예정된 임무 기간을 넘겨 지난해까지 8년 동안 화성 주위를 돌며 표면을 촬영해 지구로 전송했다. 첫 발사 시도에 화성 궤도 진입까지 성공시킨 건 인도가 처음이었다.
인도 우주 기술의 빠른 발전에는 풍부한 이공계 인력이 있다. 현재 인도에서 항공 우주 연구직은 인공지능(AI), 컴퓨터공학 분야보다 연봉이 높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 인력은 1만7000여 명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1만7396명)과 맞먹는다. 전통의 우주 강국 독일(8444명)이나 프랑스(2400명)보다 많고, 한국(1039명)의 16배 수준이다. NASA에 소속된 우주 엔지니어의 30%가 인도계라는 분석도 있다. 인도 IIT(인도공과대), 로욜라대학 등 이공계 대학들은 미국 아이비리그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스트 신분제가 여전히 엄격하지만 우주 산업에선 신분, 성별 차별이 없다. 무조건 최고 실력을 가진 인재를 등용하는 식이다. 찬드라얀 3호 발사와 착륙 등 인도의 달 탐사 사업을 이끈 최고 책임자는 여성인 리투 카리드할 ISRO 우주개발국장이다. 카리드할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교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 독학으로 학업을 마치고 항공우주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우주선 궤도 비행과 위성 교신 분야 전문가로 인도 현지에선 ‘로켓 우먼’으로 불리는 국민적 영웅이다. 인디아타임스는 “카리드할 박사는 인도 여성을 이공계로 이끄는 최고의 롤 모델”이라고 했다. 지난 2019년 달 탐사선 찬드라얀 2호 발사 사업도 여성 연구원이 책임자였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개발자의 3분의 1이 여성이었다.
◇우주 영화보다 적은 예산으로 발사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면서 고품질의 위성·발사체를 만드는 제조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번에 달 남극 착륙에 성공한 찬드라얀 3호의 개발 비용은 7500만달러(약 900억원)였다. 우주를 배경으로 제작한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2014년 개봉)의 제작비(1억6500만달러·약 2180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다. 미국은 최근 달 탐사선을 쏘아 올릴 로켓 실험 발사에만 500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인도판 ‘가성비 전략’인 ‘주가드(Jugaad) 정신’이 우주 강국으로 오르는 데 한몫한 것이다. 주가드는 힌디어로 ‘예기치 못한 위기 속에서 즉흥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한번 사용한 로켓을 다시 사용하는 미국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 기술도 원조는 인도”라며 “한국에서는 한번 발사에 실패하면 재정적 부담이 크지만 인도에서는 1년에도 40~50번 로켓 발사가 이뤄져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강하다”라고 말했다.
한정된 개발 예산 내에서 세계적 수준의 탐사선을 개발한 배경에는 인도 특유의 환경과 문화에서 비롯된 기질적 요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인구(14억), 상수도·도로 등 사회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니 자연스레 생존력과 적응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경쟁이 인도인들을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자로 만든 셈이다. 교육을 통해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열망이 커 자녀 교육열도 높고 공학은 성공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진로로 꼽힌다.
◇우주 산업에서 美와 손 잡아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반사이익도 얻고 있다. 지난 6월 NASA와 미국의 유인 달 탐사 사업인 아르테미스에 참여하는 협약을 맺었고, 러시아에 의존하던 우주비행사 훈련을 미국에 의뢰하기로 했다. 한 우주 산업 전문가는 “인도는 최근 미국과 우주 기술 동맹을 맺어 강력한 우군을 확보했다”며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 보유국이 되면서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중국과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