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는 3000명에 육박했다. 3시간에 1명꼴로 사망한 것이다. 이런 환자 규모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전국에 이식 대기자만 5만명이 넘지만 장기 기증자는 1년에 40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년 안에 이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돼지에게서 사람 신장(腎臟)을 키워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국과학원(CAS) 광저우 바이오의학보건연구원 랑쉐 박사 연구팀은 지난 7일 국제 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에 “인간·돼지 세포를 융합한 수정란(배아)을 대리모 암컷 돼지에게 이식해 ‘인간화된 신장’이 정상적인 구조와 세뇨관을 형성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과거 인간 세포로 만들어진 혈관 내벽, 골격근 등 일부 신체 조직을 돼지 몸속에서 키워낸 적은 있었지만 사람 장기를 다른 종(種)의 몸 안에서 성장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물을 이용해 이른바 ‘인간화(humanized) 장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함으로써 이식 장기 부족 문제를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돼지 배아에서 만들어진 사람 신장(흰색 선 표시 안 빨간색 부분). /Cell Stem Cell

◇돼지 수정란과 사람 세포 합친 ‘키메라 장기’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동물 몸에서 인간 세포로 이뤄진 장기인 ‘키메라(Chimera) 장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산하느냐가 관건이었다”고 했다.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동물의 몸이 섞인 괴물이다. 원칙적으로 돼지 몸의 특정 장기만 사람 세포가 들어간 키메라 장기로 키우려면 돼지 수정란(배아) 단계부터 연구진이 개입해야 한다.

우선 돼지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 수정란에서 특정 장기를 만드는 유전자를 차단한다. 이 상태로 두면 이 수정란은 해당 장기가 없는 상태로 자란다. 여기에 인간의 줄기세포를 주입한다. 줄기세포는 모든 조직·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 세포’를 말한다. 이 방식을 통해 돼지의 특정 장기는 사람의 것과 같게 되고, 추후 해당 장기를 추출해 인간 장기로 대체해 쓸 수 있다. 키메라 장기 제작에는 ‘면역 거부 반응’이라는 기술적 난관이 있다. 종이 다른 돼지와 인간의 세포가 서로 섞이기 어렵다. 하지만 중국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 기술로 한계를 극복했다. 먼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초기 단세포 상태의 돼지 배아에서 신장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 2개(SIX1·SALL1)를 제거했다. 돼지 신장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연구진은 사람 줄기세포가 환경이 다른 돼지 몸속에서 죽지 않도록 유전자를 교정했고, 이를 돼지 배아에 넣어 인간 세포와 돼지 세포가 모두 잘 자랄 수 있도록 필요한 영양분을 주며 배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돼지 배아 1820개는 암컷 돼지 13마리의 자궁에 나눠 이식했다. 연구진은 어미 돼지가 임신하고 28일 후 발달한 배아 5개를 추출해 정밀 분석한 결과, 돼지 배아의 신장을 이루는 세포의 60%가량이 사람 세포였고, 신장·방광을 연결하는 요관이 될 세뇨관의 초기 구조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람의 세포로 이뤄진 신장을 돼지 몸속에서 정상적으로 키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픽=이지원

◇실제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을까

다만 이렇게 키운 장기를 실제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여러 종류의 세포와 조직으로 구성된 장기는 실제 이종 간 이식이 이뤄졌을 때 예상치 못한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생길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향후 수년간 더 복잡하고 다양한 유전자 교정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계 일각에선 돼지 몸에서 사람 신장을 키운 이번 키메라 연구를 두고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람과 돼지 세포를 융합해 키메라 장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의 신경세포가 돼지 뇌·신경계에 합쳐져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가진 돼지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 측에선 “이번 연구에서 뇌·신경엔 사람 줄기세포가 거의 없었고 생식기관에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람 지능을 가진 돼지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돼지가 사람의 생명을 구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돼지는 장기의 형태와 크기가 사람과 비슷하다. 임신 기간이 인간의 3분의 1 정도라 인간의 장기를 빠른 시간 안에 돼지 몸을 통해 배양하기 적합하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실제로 키메라 장기 연구와 동시에 돼지 장기 자체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뉴욕대 의대 랭건병원의 로버트 몽고메리 박사는 지난 7월 한 뇌사자에게 유전자 조작 돼지 신장을 이식해 소변 생성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뉴욕대는 뇌사자가 아닌 일반 환자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올 초 미 앨러배마대 의료진은 50대 뇌사자에게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이식한 신장은 근육에서 생성되는 노폐물인 크레아티닌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소변 생성 뿐 아니라 몸 속 독성 성분을 걸러내는 성과까지 거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돼지 신장이 인간 몸속에서 장기간 기능한 사실은 장기 공급과 수요의 문제에 희망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

피부세포 이용해 배아줄기 세포와 같은 분화 능력 가진 원시 상태로 되돌린 줄기세포. 사람 난자를 이용하지 않아 윤리 문제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