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본지는 ‘한국 경제의 뉴 엔진’ 2부 5회에 걸쳐 AI 반도체, AI·양자 컴퓨터, 로켓·위성, 로봇, 바이오 등 한국이 꼭 뛰어들어야 할 미래 첨단 산업 분야를 조망했다. 다음 달 게재되는 3부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한국의 방산 산업, 갈수록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소부장 산업과 농업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스마트팜, 수소 경제 생태계 등에 대해 살펴본다.

그래픽=김성규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의 바이오 스타트업 엘비스 실험실에는 병원용 침대와 작은 헬멧이 있었다. 사람이 헬멧을 쓰고 누워 있으면 인공지능(AI)이 뇌파를 분석해 신경망 지도를 만들어 준다. 뇌 어디에 이상이 생겼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어 알츠하이머 같은 난치성 신경 질환 진단과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엘비스를 창업한 이진형 미 스탠퍼드대 교수(의학·공학)는 “가상현실에 신경망을 구현하면, 실시간으로 신약의 작용 방식과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뇌전증 진단을 시작으로 알츠하이머, 수면 치료 등으로 영역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의 바이오 스타트업 엘비스 실험실에서 이진형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2003년 이 회사를 창업했고, 올해 첫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이 교수의 연구는 글로벌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신약 개발 접근법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신약을 만들기 위해 ‘물질 합성’에 집중했다. 화학물질 수만~수십만 개를 만들어 일일이 시험했다. 10년이 넘는 기간이 1조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성공 확률은 10%도 안 됐다. 하지만 이 교수의 신경망 지도 같은 원천 ‘플랫폼’을 만들면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신경망 지도, 유전자 치료, 세포 프로그래밍 같은 신기술을 이용해 신약 개발의 효율성과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개발하기 때문에 복제약도 만들기 어렵다. 혁신 신약(First in class·세상에 없던 신약) 시장은 2030년 100조원 이상으로 커질 전망이다.

그래픽=김성규

◇복제 약 만들 수 없는 혁신 신약에 몰린다

현재 바이오 업계의 최대 화두는 mRNA 백신이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는 DNA의 유전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생산하는 공장인 리보솜이라는 세포 내 기관에 전달한다. 미국 바이오 기업 모더나, 독일 바이오엔테크는 mRNA의 성질을 역이용해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에 정확히 결합하는 항체 단백질을 생산하는 백신을 개발했다. 유전 정보만 있다면 원하는 형태의 단백질을 뽑아낼 수 있는 mRNA의 특성을 활용해 우리 몸을 하나의 제약 공장으로 만든 것이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는 각각 2008, 2010년에 설립된 신생 업체인데 100년이 넘는 제약사들이 시도하지 못한 혁신을 해냈다”며 “똑똑한 원천 기술이 있으면 얼마든지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mRNA는 엔데믹 이후 더 각광받고 있다. 모더나의 성공을 지켜본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mRNA 기술을 활용해 암, 심장 질환, 자가 면역 질환 등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화이자는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mRNA 독감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DNA에서 특정한 유전자를 떼었다 붙일 수 있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신약 개발도 크게 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병을 일으키는 ‘불량 유전자’ 대신 정상 유전자를 넣는 방식이다. 미국 버텍스세러퓨틱스가 공동 개발한 빈혈 치료제 ‘엑사셀’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판매 허가가 나오면 세계 첫 유전자 가위 신약이 된다.

그래픽=김성규

◇‘회춘(回春)’ 사업도 각광

신체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재(再)프로그래밍’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iPS세포연구소장은 지난 2006년 쥐를 대상으로 피부 세포에 4가지 유전자 조절 인자를 주입해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나는 ‘원시세포(배아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바이오 기업 제넨텍은 지난해 건강한 중년 생쥐에게 장기간 세포 역분화를 시도해 피부와 장기를 젊은 생쥐와 같은 상태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앨토스랩’은 장기와 세포의 생체 시계를 되돌리는 항(抗)노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