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100경분의 1초에 해당하는 짧은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빛 ‘아토초(attosecond) 펄스(pulse·섬광)’를 생성하는 방법을 찾아낸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원자와 전자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하는 전자동역학의 시대를 열었다. 식물이 빛을 받아 영양분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의 순간이나 방사선으로 유전자(DNA)가 손상되는 순간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3일(현지 시각) 피에르 아고스티니(Pierre Agostini·82)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페렌츠 크라우스(Ferenc Krausz·61)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 교수, 앤 륄리에(Anne L’Huillie·65) 스웨덴 룬드대 교수 등 3인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은 아토초 단위 빛의 파동을 발생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면서 “원자와 분자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자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인류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륄리에 교수는 1987년 적외선 레이저를 불활성 기체에 투과시키면 다양한 광파(光波)가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이 광파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있었는데 기존에 알려진 어떤 빛보다 짧은 주기로 진동했다. 아고스티니 교수는 2001년 이 광파의 시간폭을 측정하고,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들의 연구는 이후 크라우스 교수가 아토초 펄스를 생성해 전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데 성공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아토초 펄스는 과학자들이 자연현상은 물론 생명·소재·분석 등 공학 연구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극미 세계에서 분자나 원자, 그리고 원자 안의 전자는 아주 빠른 속도로 운동한다. 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순간 포착할 수 있는 극도로 짧은 파장이 필요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찍기 위해서 카메라 셔터 속도가 빨라져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분자 운동의 경우 펨토초(1000조분의 1초) 수준에서 관찰이 가능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전자 장치의 신호 속도가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에서 나노초(10억분의 1초)인 것에 비하면 수천 배 이상 빠른 속도다. 특히 원자와 원자 안에 있는 전자는 분자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 100경분의 1초에 해당하는 아토초 펄스가 개발되면서 이를 포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자 내 전자의 회전 주기는 약 180아토초이다. 조동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전까지는 원자 내 전자가 어디에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론적으로만 계산해야 했는데 아토초 펄스 개발로 특정 순간 전자의 움직임을 찍어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륄리에 교수는 역대 다섯 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고, 크라우스 교수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가 포스텍과 함께 세운 막스플랑크 한국·포스텍 연구소(MPK)에서 아토초 펄스를 연구한 바 있다.
남창희 기초과학연구원(IBS) 초강력 레이저과학연구단장은 “아토초 펄스는 아직도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라며 “앞으로 핵의 운동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6400만원)를 3분의 1씩 나눠 받는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2일 생리의학상을 필두로 이날 물리학상, 4일 화학상, 5일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등 순으로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