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IAC) 행사장에 마련된 중국 전시관. 자국 우주 발사체와 탐사선 모형을 선보인 중국은 전시장 전체 면적의 7분의 1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다. /바쿠=변희원 기자

2일(현지 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에서 열린 제74회 국제우주대회(IAC) 주인공은 중국이었다. 이날 오전 개막식에서 사회자가 대회 시작을 알리자마자 무대 화면에 중국 유인 우주정거장 ‘톈궁’에 있는 우주인 3명이 등장했다. 이들은 축하인사와 함께 톈궁의 성과를 5분 남짓 설명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들의 축전 영상은 개막식이 한참 진행된 뒤에나 등장했다.

세계 각국이 달탐사와 개발을 목표로 한 ‘시스루나(Cislunar)’ 프로젝트를 본격화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우주 경쟁 판도가 재편되고 있다. 지구와 달 사이 공간을 뜻하는 시스루나는 달에서 다양한 실험에 도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화성과 같은 보다 먼 우주로 나아갈 역량을 기르는 게 목표다. 국제 협력이 불가피한 우주 개발의 특성상, 시스루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국제 정세에 따른 ‘편먹기’가 필수적이다. 이번 IAC에서는 중국이 우주 개발 1위 국가인 미국에 맞서 위세를 과시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미·중 갈등과 경쟁이 지상을 넘어 우주에서까지 치열하게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우주개발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인도와 중동의 급부상도 관심을 모았다.

◇국제 우주 대회 최대 스폰서는 중국?

이날 IAC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중국 전시관이 위용을 자랑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국가와 민간 업체 전시관이 70곳인데 이 중 중국은 전시장 전체 면적의 7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 민간 업체까지 포함하면 중국 우주 관련 전시가 전체 면적의 20%에 육박했다. 중국 전시관에는 발사체와 탐사선 모형을 세워놓고 항아(중국 신화에서 달에 사는 여신이자 중국 달 착륙선의 이름) 옷을 입은 여성 모델 2명이 안내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직접 부스 운영을 하는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나 작은 다큐멘터리 상영관을 마련한 미 항공우주국(NASA)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픽=정인성

올해 IAC가 열린 아제르바이잔은 친(親)러시아 국가이면서 이웃 아르메니아와 전쟁 중이다. 이 때문에 유럽우주국(ESA)은 올해 대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NASA도 전시 규모를 줄였다. 미국과 유럽이 IAC의 주도권을 놓은 올해를 틈타 중국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 가장 협찬금을 많이 낸 ‘프리미어’ 스폰서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고 개막식과 전시관의 수장 역할을 맡았다. 3회 연속 IAC를 참가한 한국 우주 업체 관계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중국의 약진”이라며 “최근 중국의 우주 기술이 미국을 거의 따라잡았다는 얘기가 과장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했다.

중국이 미국과 유럽 중심의 달 유인 탐사 계획 ‘아르테미스’에 맞서 새로운 국제 연대를 만들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한 중동 우주업체 관계자는 “앞으로 아르테미스와 중국-러시아 혹은 중국-중동과 같은 대결 구도로 우주개발 경쟁을 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우주 탐사와 우주 자원 개발’ 포럼에서 달에 유인 기지를 세운다는 목표를 공개하고 자원 개발 시설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중동, 새로이 떠오른 우주 조력자

중국 다음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인도 전시관이었다. 특히 인도는 최근 달 착륙을 성공시키면서 미·중 우주 경쟁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 전시관에서 만난 해외 우주 관계자들은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우주개발국이라면 모두 인도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와 UAE는 다른 주요 우주 개발 국가보다 출발이 한참 늦었고, 아직 이렇다 할 기술을 갖추진 않았지만 전시관은 중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수준이었다. 이들이 IAC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이유는 우주 개발 분야의 국제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UAE는 미국 대학 연구실, 한국 위성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2020년 화성 궤도 탐사선 발사에 성공했다. 사우디는 최근 ISS 우주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사우디 우주위원회를 사우디 우주국(SSA)으로 격상했다. 사우디는 지난 6월 SSA 설립 후 곧바로 중국 측과 회의를 열어 우주 탐사 분야 협업 강화를 논의했다.

☞국제우주대회(IAC)

국제우주항행연맹(IAF)이 1950년 파리 총회 이후 매년 개최하는 ‘우주 올림픽’. 우주 기술·우주법·우주개발 촉진을 위한 학술 회의와 각국 우주 관련 기관과 민간 우주 업체 전시회가 개최된다. 한국에서는 2009년 열렸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는 90국 150여 기관·업체에서 6000명이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