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하인리히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이 5일 양자컴의 핵심 기술인 전자 스핀 큐비트 개발에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효인 기자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전자의 스핀(자전)을 이용한 큐비트(양자비트) 개발에 성공했다. 다른 나라 연구진들과 전혀 다른 설계로 양자컴퓨터의 기본 정보 단위인 큐비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각국이 초전도체(전기 저항이 없는 상태), 이온트랩(이온을 가둬놓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큐비트를 만들어 양자컴퓨터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가운데 국산 기술로 큐비트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BM 등 글로벌 양자컴 선두 주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강력한 기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연구팀이 원자의 전자 스핀을 이용한 새로운 방식의 큐비트 개념을 제시하고, 시스템 구현에 성공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6일 게재된다.

기존 컴퓨터의 정보 단위인 비트는 0과 1 중 하나의 값만 나타낼 수 있다. 반면 양자역학 현상에 기반한 큐비트는 0과 1의 값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어 여러 계산을 병렬로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현재 최고 성능의 수퍼컴이 1만년 이상 계산해야 하는 난수 문제를 양자컴은 200초 만에 해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양자컴을 만들기 위해서는 0과 1의 값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양자 중첩·얽힘’ 현상을 유지하는 큐비트가 필요하다. 또 여러 개의 큐비트를 동시에 활용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오류가 적은 큐비트를 많이 쓸수록 양자컴의 성능이 올라간다. 하인리히 단장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최첨단 장비 ‘전자스핀공명-주사터널링현미경(ESR-STM)’을 이용해 티타늄 원자 속 전자의 스핀을 제어해 큐비트로 만들었다. 연구팀은 최대 3개의 티타늄 원자 큐비트를 동시에 가동하는 데도 성공했다.

전자 스핀 큐비트는 1나노미터(10억분의 1m)에 불과해, 현재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초전도체 큐비트에 비해 크기가 작고, 이론적으로 모든 원자를 활용할 수 있다. 응용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사이언스는 “이 기술은 오류나 결함 없이 수십에서 수백 개의 큐비트를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최고 성능의 양자컴은 IBM이 보유한 초전도체 기반의 433큐비트 ‘오스프리’이다. 다만 초전도체 기반 수퍼컴은 큐비트 유지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아 발전 속도가 느리다. 연구에 참여한 박수현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연구위원은 “초전도체 큐비트, 이온 트랩 큐비트 등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 유럽이 한참 앞서가고 있지만 전자 스핀 큐비트는 우리가 선두 주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