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가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기적의 주사’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노보노디스크 ‘위고비’의 아성을 무너트릴 경쟁 상대가 등장하면서 블록버스터 시장으로 떠오른 비만 치료제 경쟁이 한층 격화할 전망이다.

FDA는 8일(현지 시각) “비만이나 과체중 성인의 비만 치료를 위해 젭바운드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주 1회 투약하는 젭바운드의 주성분은 티르제파타이드로 지난해 2형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된 ‘마운자로’와 같은 성분이다. 일라이 릴리는 “비만은 치료 가능한 만성 질병”이라며 “새로운 치료 옵션은 비만을 가진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비만 치료제 왕좌의 주인은?

젭바운드는 혈당과 체중 조절에 영향을 주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과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자극 폴리펩타이드(GIP)’ 등 두 가지 호르몬에 작용한다. GLP-1은 뇌에서 식욕을 감소시키고 소화 속도를 늦춰 적은 식사로도 더 오래 포만감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비슷한 효과를 가진 GIP는 지방세포를 분해하고 메스꺼움을 줄여준다. GIP는 체중 감량 효과가 미비하지만 GLP-1과 함께 작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잽바운드는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위고비보다 효과가 뛰어나다. 임상 3상을 통해 72주 간 젭바운드 15mg을 투약한 사람들의 체중이 평균 22.5%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임상에서 위고비는 평균 14.9% 감량, 노보노디스크의 또 다른 비만 치료제 삭센다는 7.5% 감량하는 효과를 보였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젭바운드를 ‘비만 치료제의 킹콩’이라고 표현했다.

젭바운드의 FDA 승인 소식에 일라이 릴리 주가는 이날 3.2% 상승 마감했다. 일라이 릴리 주가는 올해만 70% 가까이 오르며 시가총액이 5900억달러(771조원)에 이른다. 노보노디스크가 위고비 출시 후 기업 가치가 4400억달러로 급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라이 릴리 주가는 더 오늘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 비만 치료제들은 한 번 사용하게 되면 도중에 약물을 바꾸거나 중단하기 힘든 만큼 지속적인 수익이 발생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가 비만 치료제로 돈을 갈퀴로 끌어 모으고 있다”고 했다.

◇뜨거워지는 비만 치료제 경쟁

비만 치료제 품귀 현상이 지속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앞다퉈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젭바운드에 이어 또 다른 글루카곤 호르몬을 첨가한 더 강력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한편, 경구용(먹는) 비만 치료제 출시를 통해 시장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노보노디스크도 위고비의 알약 버전을 위한 글로벌 임상 3상을 마치고 미국과 유럽에 허가 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다. 화이자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 등도 비만 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뇨와 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은 GLP-1은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매, 심혈관 질환, 약물 중독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치료제가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은 GLP-1 세계 시장 규모가 2032년까지 7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전망치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