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정부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발표 이후 과학기술계와 연구 현장은 일제히 반발해왔다.
특히 정부 R&D 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기초과학 분야의 비판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대한수학회·한국물리학회 등을 회원으로 둔 기초과학학회협의체와 기초연구연합 등 주요 학회는 성명에서 “예산 삭감 최대 피해자가 대학원생과 박사 후 연구원 등 학문 후속 세대라는 점은 과학기술인 위상 추락으로 인한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과학기술 패권 경쟁에서 인재 양성만이 유일한 희망인 대한민국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일부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소, 기초과학연구원(IBS) 등에서는 내년 채용 인원 축소 및 비정규직 감원 등을 검토해 왔다. 박사 후 연구원이 주를 이루는 출연 연구소 비정규직은 연구소에 배정된 정부 예산 규모에 따라 채용이 결정된다.
이공계 학생들도 단체 행동에 나섰다. 서울대와 KAIST 등 11개 대학 학생회는 지난달 30일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연구하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라는 성명에서 “R&D 예산 삭감으로 국가 주도 연구 개발에 대한 믿음도, 미래를 향한 꿈마저도 꺾인 수많은 인재가 연구와 학문을 향한 꿈을 접거나 해외로 떠나갈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면서 R&D 예산 삭감 원점 재검토를 주장했다.
대형 기초연구 시설 운영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전기료 인상 등으로 예산이 증액돼야 하는 상황에 오히려 예산이 줄어들면서 가동 시간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가 수퍼컴퓨터를 운영하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관련 시설은 실제로 올해 전기 요금 예산 부족으로 가동이 일부 중단된 바 있다. 우주 기원 등 기초과학 난제를 푸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중이온 가속기는 내년 6개월밖에 가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국민의힘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예산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사람이 떠나는 문제나 대형 연구 시설 구축·운영 등 과학기술계의 여론을 듣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주력해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