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웨덴 생체공학통증연구센터

스웨덴에 사는 50대 여성 카린은 20여 년 전 농사일을 하다가 사고로 오른 팔꿈치 하단 부분을 잃었다. 오랫동안 인공 보철물을 착용했지만 몸에 맞지 않았다. 밤에는 환상통(절단 부위에서 느끼는 통증)에 시달렸다. 절망 속에서 살던 그에게 3년 전 기회가 찾아왔다. 재활 기술 전문 연구 기관인 스웨덴 생체공학 통증 연구 센터 연구진에게 첨단 의수 ‘바이오닉 핸드(hand)’를 시험 착용해 보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오른팔 뼈에 의수를 심어 단단히 고정하고, 전극을 오른팔의 근육과 신경에 심어 의수와 연결해 원하는 대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신체 내부 골격에 전극을 심는 방식의 의수가 실제 손처럼 정상 작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수를 통해 새 삶을 얻은 카린씨의 사연은 지난달 1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로보틱스에 등재된 연구 논문을 통해 알려졌다. 의수를 개발한 스웨덴 샬메르스 공대의 막스 오르티스카탈란 박사는 “카린씨는 정상 상태의 80% 수준으로 손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며 “바닥의 동전을 주워 유리병에 넣거나, 캐리어에 여행 짐을 꾸리는 일 등 대부분의 일상 업무를 주변 도움 없이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기존 로봇 의수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번 연구는 사고·질병으로 신체 일부를 잃은 절단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절단장애인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고로 손이나 팔을 잃고 장애를 겪는 사람은 14만명인데 실제 손처럼 작동하는 전자 의수 보급률은 1%대에 머물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정상의 80% 수준 회복

카린씨가 착용한 의수에는 치아 임플란트 수술에 널리 사용되는 골 유착(osseointegration) 기술과 팔 근육·신경에 전극을 이식해 의수와 연결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골 유착은 뼈에 인공물을 심어 결합하는 기술이다. 임플란트 소재를 뼈에 결합하면 뼈 세포가 그 주위에 촘촘하게 자라면서 합쳐진다. 연구진은 사람 뼈와 잘 결합하면서 강도가 높은 티타늄 나사를 환자 아래팔(전완) 뼈에 박았다. 기존 보철물은 시간이 지나면 흔들려 통증을 유발하는데 아예 뼈에 의수 기계를 장착해 몸처럼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연구진은 또 손의 운동과 감각을 관장하는 두 가지 신경과 의수를 전극으로 연결했다. 이 전극은 뇌에서 나오는 신경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꿔 의수에 전달,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손가락이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 물건을 잡을 때 의수에 생기는 전류 변화를 뇌에 전달해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연구진은 신체 절단 정도에 따라 작동 성능이 달라지는 기존 로봇 의수의 한계도 극복했다. 로봇 의수는 팔 근육의 전기 신호와 수축을 이용해 조절하는데 사고로 잃은 신체 부위가 많아 근육량이 적을 경우 손 움직임도 제한된다. 연구진은 손의 운동, 감각을 관장하는 신경의 말단을 절개해 신경 다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신경 다발을 허벅지 근육에서 떼낸 작은 근육 조직으로 감싸는 식으로 신경을 연장해 의수에 연결했다. 뇌에서 나오는 신경 신호가 더 많이 전달되도록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이럴 경우 사고로 남은 근육이 상대적으로 적어도 의수를 움직일 수 있다.

첨단 의수를 이식한 이후 3년의 재활 훈련을 거쳐 카린씨는 혼자 음식을 준비하거나 옷·가방의 지퍼를 잠그는 일상 활동에 무리가 없어졌다. 카린은 “의수를 쓰기 전에는 고기 분쇄기에 손을 대는 환상통이 있었는데 이제 그런 고통에서 해방됐다”며 “진통제 복용량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AI로 섬세한 손 동작 교정

카린씨는 첨단 의수 장착 이후 손 움직임이 많이 개선됐지만 한계도 있다. 피아노를 치는 동작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기는 어렵다. 연구진은 더 정밀한 손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연구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오른팔의 여러 신경 다발에서 전달되는 뇌의 신경 신호를 AI로 분석해 손이 반응하는 속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물건을 집을 때 물체 크기와 질감을 분석하거나 평소 손 움직임 데이터를 학습해 반복되는 동작을 더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다. 연구진은 “사용자의 뼈와 근육, 신경에 직접 연결하는 생체 공학 손 기술에 AI 기술을 더하면 뇌 신호를 정확하면서도 간단한 움직임으로 변환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기계 융합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AI 기술을 활용한 의수·의족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한국기계연구원 의료기계연구실 이강호 선임연구원은 지난 2월 의족을 부착하는 소켓의 헐거워진 공간을 실시간 감지해 소켓 내부에 공기를 채워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절단 부위는 혈액 순환, 피부조직 상태에 따라 미세하게 변화하는데 이런 변화에 맞춰 자동으로 의족 소켓 내 공기 압력을 조절해 환부 통증을 완화한다”고 설명했다.